‘생일’ 설경구 “세월호 소재, 사명감·의무감 때문에 출연 아냐” [인터뷰]
입력 2019. 04.04. 17:54:25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설경구가 빡빡하던 스케줄을 조정하고 ‘생일’에 출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그의 마음을 동요케 한건 ‘생일’의 포용력 때문이었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에서 설경구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수호(윤찬영)의 아빠 정일 역을 맡았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던 그는 아들의 비보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3년이 지난 후에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이미 아들은 떠난 지 오래고 아내 순남(전도연) 힘들었을 때 가족의 곁에 없었던 남편을 원망하며 등을 돌렸다. 막내딸 예솔(김보민)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에 정일은 조심스럽게 조금씩 예솔에게 다가가고 순남의 상처를 위로한다.

영화 ‘생일’은 주인공들이 직접적으로 ‘세월호’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전개상으로 세월호를 소재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순남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주민들의 관심을 호소하는 세월호 관련 시위, 납골당과 아이들의 교실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유가족들의 행동과 말 등에서 이를 추론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상 규명 중이다.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나 이를 소재로 해 출연에 망설임이 들 수도 있으나 설경구는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영화에 합류했다. 그의 결단력에는 어떠한 사명감 혹은 의무감보다는 다른 것이 있었다. 더셀럽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영화처럼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간 설경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니까 시나리오로만 보면 ‘생일’은 담백한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더라. 저는 그게 되게 좋았다. 놓치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툭툭 던지는 말들이 칼처럼 느껴지는데도 담고 있었다. 강요도 하지 않고. 그리고 좀 더 확대하면 그분들이 우리의 이웃이지 않나.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이웃 얘기라고 생각했다. 또 정일이라는 캐릭터가 이전 아버지와도 달랐다.”

‘생일’의 시나리오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과 현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담고 있었다. 이는 이종언 감독이 세월호 봉사활동을 하면서 유가족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종언 감독이 2015년부터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더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영화에도 출연한다고 못했을 것이다. 그런 얘기가 저를 움직인 것이다. 신인 감독인데 하기도 전에 단단하게 느껴졌으니까. 언젠가 세월호 영화를 하려면 이런 감독이랑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느낀 이종언 감독은 역시 단단했고 지금은 더 단단해졌다.”



영화는 정일의 시선으로 극이 시작된다. 택시를 타고 동네로 들어온 정일이 차창 밖을 바라보는 시선, 정일의 시점에서 보이는 낯선 동네 등의 연출로 하여금 관객도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정일은 사건의 당사자면서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다. 당사자다보면 분노하는 게 있는데 정일은 그렇지 않다. 영화의 도입부는 정일의 어깨와 등을 통해서 극의 중심에 같이 들어가게 한 것이다.

앞서 개봉한 ‘우상’(감독 이수진)에서 설경구는 자신의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핏줄을 중시하는 중식 역을 맡았다. 이를 비롯해 그의 전작들에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버지 혹은 중년 남성이 주였다면 이번 ‘생일’의 정일은 속으로 감내하고 견뎌낸다.

“여태까지 했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접근한 아버지였다. 정일은 사건이 발생하고 3년 후에 죄책감을 안고 귀국하는데 감정을 쓰는 것조차도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하는 말처럼 ‘이제 와서 슬퍼?’하는 반응이 나오는 캐릭터다. 그래서 꾹꾹 누르려고 했다.”
영화는 수호의 생일 모임을 꺼려하던 순남이 점차 마음을 열고 함께 수호를 추억하고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막을 내린다. 특히나 영화의 핵심인 이 생일 모임은 30분 롱테이크 장면으로 3일에 걸쳐서 탄생한 장면이다. 설경구는 촬영에 앞서 생일 모임의 동영상을 보면서 준비를 해나갔다.
“감독님도 실제 생일 모임처럼 똑같이 세팅을 하려고 했다. 저한테 주어지는 대사는 한정적이었고 거기에 충실하려고 했다. 저는 그 모임에 수호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극 중에서 순남은 여전히 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순남은 조그만 인기척에도 켜지고 꺼지는 현관의 센서등을 보며 수호가 돌아오지 않았을까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자다가도 일어나 현관을 바라본다. 이를 속상해하던 딸 예솔은 정일에게 고쳐달라고 말하고 한동안 센서등이 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생일모임이 있은 후 다시 센서등이 켜지고 꺼진다.

“GV할 때 한 분이 그 장면에 대해서 ‘아물지 않은 상처를 표현하려고 한 것이냐’고 질문을 하셨었는데 그 해석도 맞는 것 같다. 제가 알기론 이종언 감독이 유가족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 장면을 넣었다고 들었다. 많은 유가족들이 센서등을 고쳐도 또 다시 켜지고 계속 반복된다고 하더라.”

‘생일’은 상업영화로 만들어졌으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세월호와 관련된 시선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영화가 시대를 대변하는 영상물인 만큼, ‘생일’도 다음 세대들에겐 큰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의 인생에 ‘생일’이 큰 역할을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또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나.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주는 것으로 저는 만족한다. 유가족들이 잊혀지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하더라. 또 잊을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 이 영화가 그분들을 잡는 역할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프레임 안에 넣을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작은 위로 한 마디 해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찍으면서 위안을 받았으니 관객분들도 그것을 느끼셨으면 한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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