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읽기] ‘82년 김지영’이 불편한 김나정 아나운서의 비틀린 ‘여자 권력’
입력 2019. 10.29. 18:10:21
[더셀럽 한숙인 기자] ‘82년생 김지영’은 21세기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곪고 곯아 딱지가 앉은 상처를 힘들게 덧칠해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에 담담하게 반기를 든다. 담담함으로 인해 더욱 예리해진 주제의식에 누군가는 오열하고 누군가는 반감을 드러낸다.

‘82년생 김지영’은 이런 예리한 주제의식으로 인해 페미니즘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어떤 관점을 견지하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그럼에도 김나정 아나운서의 ‘저의 개인적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고 올린 글은 여성의 미덕을 수동성으로 옭아매 권력이 남녀 종속의 개념을 기반으로 단단해져 왔음을 실감케 했다.

‘사랑스러움’은 매력적이지만 사랑스러움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타자에 의해 인정받아야 하는 수동성이 됐을 때 이는 권력에 굴복한 생존본능일 뿐이다. 김나정은 ‘여자의 권력’을 언급함으로써 남녀를 권력 관계로 규정하는 우를 범했다. 남자의 권력에 상응하는 여자의 권력은 결국 상대적인 것으로 이 상대성은 결국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는 ‘수동성’으로 귀착되고 만다.

김나정은 “남녀 관계에서 똑똑한 여자는 남자에게 화를 내거나 바가지를 긁는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걱정해주고 애교 있게 안아주면 그게 관계에서 오히려 현명하게 남자를 다스리고 ‘예쁨 받고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했다”라며 “페미니스트들은 여자의 권력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라고 했다.

김나정은 ‘여자의 권력’이라고 했지만 ‘예쁨 받고 사랑받는 방법’이라는 수동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남녀를 종속 관계로 끌어내렸다.

이어 “바보 같은 여자들의 특징은 마음속으로 대게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많이 내야하고,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남자가 스스로를 나쁜 남편, 또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남자라고 남자들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면 본인이 관계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남자에게 열패감을 주지 않는 여자가 바보 같지 않은 여자라는 그의 견해 역시 배려를 특정한 성의 미덕으로, 혹은 배려를 성적 특질이 있는 미덕으로 축소했다.

김나정 아나운서는 “저의 의견은 페미니즘이나 영화 자체에 대해서 '맞다, 틀리다'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논란을 피하려는 듯한 전제는 오히려 그의 수동적 관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안락하다고 믿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소설 ‘인형의 집’ 로라와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자신을 가둬둔 안락한 현실이 끔찍한 악몽임을 각성하고 탈출을 감행한 이유를 한 번쯤의 숙고할 필요가 있다.

1500년대를 살았던 신사임당은 남자에게 종속된 재산으로 여겨졌던 당시 조선시대 사회에 조용한 반기를 들며 화가로서 문인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SBS ‘사임당 빛의 일기’는 신사임당과 딸 이매창의 대화를 통해 조용하지만 파급력만큼 결코 잔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의 단단한 신조를 되세기게 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까”라며 화원의 꿈이 꺾인 이매창(신수연)의 울분에 신사임당(이영애)은 “이 어미도 네 나이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조선에서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주 답답하고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것이야. 허나 언젠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라며 딸을 위로했다.

이매창이 “계속 깜깜한 밤이고 영영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면 어떻합니까”라고 묻자 신사임당은 “물론 밤은 길겠지. 허나 우리 매창이가 누군가와 혼인을 해서 딸을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딸을 낳고, 그 아이의 아이가 또 딸을 낳을 때쯤이면 해는 뜰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가 그 아이들의 밤을 조금씩 밝혀주면 되지 않겠느냐”라며 현답을 내놓았다.

드라마 대사로 치부하기에 신사임당은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아들과 딸들로, 제아무리 양반 가문 자제라고 해도 글공부조차 제약을 받았던 당시 조선시대 여성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

현재 삶에 의문을 갖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자와 수동성을 동일시하게 하고, 이를 받아들이면 안락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회의 현실이 더욱 개탄스럽다.

[더셀럽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김나정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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