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이정은, 나눌 줄 아는 진정한 배우 [인터뷰]
입력 2019. 12.13. 16:37:57
[더셀럽 전예슬 기자] 2019년은 이정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제40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수상에 이어 드라마까지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 그다. 올 한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이정은은 “나눠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그의 꿈이 이뤄질 날이 머지않았음이 느껴진다.

기자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정은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우조연상 수상 후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종영까지 바쁜 나날을 보낸 그는 “걱정했던 것보다 피해가 아닌 득이 됐다고 말씀해주셔서 좋다. 역할을 수행했을 때 검증받은 역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결과까지 좋다는 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거고,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아서 좋다”라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인기리에 종영한 ‘동백꽃 필 무렵’에서 이정은은 동백(공효진)의 엄마 정숙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극중 정숙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등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27년 만에 동백과 재회한 정숙은 동백에게 “아가”라고 부르다가도 “사장님”이란 호칭을 사용, 시청자들로 하여금 정숙이 그동안 살아온 삶에 궁금증을 자극한 것.



이후 퍼즐처럼 맞춰진 전개에서 정숙이 동백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자신의 사망 보험금을 주기 위해서였다. 동백의 주변을 맴돌며 그를 지켜준 인물은 정숙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지며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동백을 위한 정숙의 내리사랑. 이정은은 정숙의 서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려 했을까.

“작가님이 미리 대본을 주시진 않았어요. 정숙이의 삶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웠고 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만 말씀해주셨죠. 드라마 중간에 개별 대본을 주셨어요. 각자의 역에 숨겨진 부분이 있었죠. 작가님과 처음 얘기를 나눌 때 편지로 그런 부분이 있을 거라고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셨는데 직접적인 대사가 있는 건 중간에 받았어요. 앞에 했던 연기는 알고 했던 것은 아니고 짐작으로 한 거죠. 정숙이가 늘 딸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것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서사가 나왔을 땐 깜짝 놀랐죠. 보는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퍼즐처럼 맞춰졌을 때 쾌감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해요.”

‘동백꽃 필 무렵’ 속 등장한 대부분의 장면은 촘촘한 대본을 통해 완성됐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신이나 애드리브가 거의 없다고 한다. 임상춘 작가의 섬세한 필력은 극 초반 뿌려둔 ‘떡밥’을 모두 회수하며 완벽한 결말을 완성해냈다. 이정은 역시 임 작가의 대본을 보며 매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정숙이가 까불이를 직접 찾아갔을 때 놀랐어요. 지문에 ‘서늘하게’ ‘놀람이 없이’ ‘각오가 되어 있는’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게 어떤 힘 같았죠. 임 작가님이 가진 날카로운 글의 힘이 느껴졌어요. 보편적인 이야기 같은데 그 속에 숨겨진 맛깔스러운 대사와 놀라운 장면이 많았어요. 까불이를 만나러 가는 신에선 ‘드디어 만나러 가는 건가’ 하면서 놀랐죠. 특히 기억에 남는 신은 피부 관리실 신이에요. 드라마 후반에 찍었는데 사실 저 자신도 정숙이 매번 말하는 ‘동백이 너를 위해서 뭐 하나 할게’가 뭔지 몰랐거든요. 극 초반 주목한 건 까불이가 등장하기 때문에 모두가 의심받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와 정숙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였어요. 그래서 딸을 돌봐왔던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저도 매번 감동받았죠. 저만해도 정숙이 동백이에게 다시 한 번 사기치고 갈 줄 알았거든요. (웃음) 그런 게 아니란 사실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가 힘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정은은 지난달 21일 개최된 제40회 청룡영화상에서 ‘기생충’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극한직업’ 이하늬, ‘변신’ 장영남, ‘벌새’ 김새벽, 그리고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기생충’ 박소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수상자로 호명됐다.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입주가사도우미 문광 역을 맡아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인터폰 장면은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안겼다. ‘기생충’으로 올해 포문을 열고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동백꽃 필 무렵’까지 흥행 3연타를 날린 그다.

“배우로서 다행스러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다음 차기작을 고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사실 ‘동백꽃’은 ‘기생충’ 전에 들어왔던 작품이에요. ‘기생충’의 이미지가 어떻게 사용될지 몰랐는데 다행히 ‘동백꽃’에도 스릴러라는 포지션이 만들어져서 영향이 좋은 쪽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조금만 대사를 해도 스릴러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좋은 영향이었어요. 저를 처음 보신 분들이나 ‘기생충’을 안 본 분들이 이 작품을 통해 ‘기생충’을 다시 보시니까. 좋은 영향을 양방향에 미친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천운이에요. 이런 역할을 계속 맡을 수 있다는 건 올해 운이 좋은 거죠. 그래서 이제는 다른 후배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처럼 보이지만 이정은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 속 다양한 얼굴로 대중들을 만나왔다. 1991년 연극 무대로 데뷔한 그는 2000년 ‘불후의 명작’을 통해 충무로로 무대를 옮겨 약 70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이제는 이정은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작년부터 작품 운이 좋았어요. 저의 어떤 장점을 보신 것 같아요. 봉 감독님도 저와 근 10년을 보면서 한 번도 작품 제의를 하지 않으셨거든요. 사적인 얘기도 나누지 않았어요. ‘기생충’ 대본이 들어왔을 때 시기적으로 맞아서 ‘이건 내가 표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역할이 시대에 따라 변한 거죠. ‘미스터 션샤인’ 때도 행랑 아버지가 했을 법한 역할이 여자 역으로 바뀐 거예요. 정숙의 경우도 자식을 버리고 간 엄마를 이렇게 심도 있게 다뤄준 작품이 없었죠. ‘기생충’ 문광도 남편의 위기를 극복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린 게 없었어요. 시대의 변화에 힘을 입은 거죠.”

누군가는 이정은에게 ‘2019년은 이정은의 해다’라고 한다. 전 방위 활약을 펼쳤기 때문. 그렇다면 그에게 2019년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쉬었을 때 쉬는 대로, 일을 할 때는 일 하는 대로 농사에 임하는 자세로 잘 거둔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할 때 불행한 생각을 해요.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팀을 만드는 구성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죠. 더 침착하게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에 작품이 한 쪽에 몰려서 바빠 정리를 못했어요. 연말이니까 그분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소중한 시간 아닐까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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