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한석규와 연기하며 느꼈던 쾌감 [인터뷰]
입력 2019. 12.27. 16:23:06
[더셀럽 전예슬 기자] 관객을 압도한다. ‘연기’ 하나로 전 세대를 아우른다. 그리고 깊은 울림까지 전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로 또 한 번의 연기 정점을 찍은 배우 최민식이다.

기자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에서 장영실 역을 맡은 최민식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는 최민식, 한석규가 1999년 개봉된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래서일까.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한석규와 오랜만에 호흡한 소감이었다고 한다.

“석규와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여러 작품을 하면서 많은 후배, 선배, 동료들과 호흡을 맞췄잖아요. 석규가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저는 그 친구를 봐왔어요. 졸업도 같이 하고 작품도 함께 많이 했어요. 하늘을 우러러 정말 열심히 했죠. 저희는 미팅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했어요. 하하.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다 안 믿어요. 연극영화과 출신이니까. 왜 시간이 없었냐면 연극을 준비할 때 학생극이다 보니까 세팅을 저희가 다했거든요. 선배들 연극 셋업, 후배들 것들도 도와주고 탁자, 의자 등 소품도 저희가 다 만들었어요. 석규와 함께 작품을 한 시간들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열 마디 할 것을 두, 세 마디만 해도 알아요. 서로 시나리오를 두고 토론했던 적도 있었어요. ‘천문’은 역사나 그분들의 업적 등이 책, 방송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으니까 업적을 이루기까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자고 했어요. 예열과정이 필요 없었죠. 바로 본론에 들어가고 디테일을 잡았어요. 저와 석규는 그런 게 장점인 거죠.”



최민식은 극중 조선의 하늘을 연 천재 과학자 장영실 역을 맡았다. 장영실은 본래 부산 동래현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으나 타고난 재주가 조정에 알려져 태종 집권 시기에 발탁됐다. 세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장영실의 재주를 눈 여겨 보고 있었으며 즉위 후 정5품 행사직을 하사하며 장영실과 함께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의기들을 만들어나갔다. 실제로 세종과 장영실은 신분 격차를 뛰어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 최민식은 한석규와 함께 장영실, 세종의 신분 차이를 뛰어 넘는 ‘특별한 관계’에 집중했다고 한다.

“탁구를 치면 서브를 넣잖아요. 리시브를 하면 우리 쪽 매트로 넘어와요. 그게 어쩔 땐 스핀으로, 직구로 넘어올 때가 있어요. 비유를 하자면 랠리를 하는 그 맛이죠. 장시간 지쳐가면서도 왔다 갔다 하는 재미가 있어요. 제가 스매싱을 했을 때 그쪽에서 못 받는다던지, 그 반대의 경우라도. 랠리를 아주 오랫동안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친구이자 파트너였죠. 영화 후반부에는 장영실이 옥사에 있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잖아요. 세종과 울면서 부둥켜안는 장면인데 지문에는 ‘운다’가 없었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제가 우니까 세종도 켜켜이 쌓여왔던 장영실에 대한 마음, 장영실로 살면서 전하에 대한 애틋함이 저도 모르게 나오니까 석규도 울더라고요.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그게 호흡이었죠. ‘여기서 왜 울지?’ 이러면 피곤해지는데 그것을 같이 연주하듯, 군소리 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내는 호흡인 거죠. 리액션을 하면 돌려주고 다시 어우러지는. 이런 것들에 쾌감을 느꼈어요.”

한석규를 향한 최민식의 믿음과 깊은 신뢰가 느껴지는 인터뷰였다고 할까. “‘천문’이 아니었어도 석규랑 하는 거면 했을 거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한석규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허진호 감독과는 예전부터 술자리에서 봐왔어요. 갑자기 느닷없이 ‘천문’ 시나리오를 주더라고요. ‘한석규와 같이 하면 좋겠다’라고 했죠. 바로 ‘콜’ 했어요. (웃음) 시나리오를 보니 괜히 ‘허테일(허진호+디테일)’이 아니더라고요. 관계에 집중하는 게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 드라마도 아니고, 과학 드라마도 아니니까. 그래서 석규와 나에게 줬구나 싶었죠. 하하. 대본을 주면서 역할을 정하라고 하더라고요. 석규에게 ‘뿌리깊은 나무 했으니까 또 할래?’라고 물어보니 먼저 ‘하겠다’라고 했어요. 세종을 다르게 하고 싶다고. 장영실은 문헌에 기록된 게 없잖아요. 배역이 왕이라서 좋고, 노비라서 안 좋고가 아니라 그 배우가 뭔가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백이 얼마만큼 있는지, 그것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뭘 해도 상관없었죠.”



최민식이 표현한 장영실은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돋보인 인물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자신이 꿈꾸던 일을 실천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속 최민식의 얼굴은 타 작품에서 보여줬던 연기가 아닌 새로운 얼굴이었다.

“로봇 공학자 데니스 홍이 TV 강연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로봇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진짜 아이 같았어요. 저희는 과학적인 지식이나 그런 게 짧잖아요. 저만해도 로봇은 장난감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거든요. 그걸 한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설명하고 즐거워하며 빠져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저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장영실은 세종 시대에 저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비정치적인 인물이고 순수해요. 실록에 보면 세종이 장영실을 내관처럼 두고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생각했죠. 신분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분과 천한 계급의 사람이 그 신분을 다 무시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의기투합한 거죠. 그 상황 자체가 재밌었어요.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왕과 신하의 모습이 아닌, 둘에게는 아이들 같은 순수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았죠. 신분 관계없이 세종의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아량, 따뜻한 마음이 장영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관계를 상상하고 그린 거죠.”

이 영화는 세종 24년 당시 발생한 ‘안여 사건’에서 출발한다. 장영실이 생사는 물론, 발명품의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을 남긴 채 사라진 이유에 대한 호기심과 영화적인 상상력이 동원한 ‘팩션 사극’인 것. 이 같은 이유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뒤따르고 있다.

“그래서 열어놓고 보셨으면 해요. 명나라에 의한 사대주의에 빠진 대신들은 사실이잖아요. 거기에 비어있는 공간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이야기를 했을까는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창작을 하는 재미가 있다고 봐요. 그런 정도의 여유로 역사극을 하고 싶은 거죠. 물론 사실은 사실대로 묘사를 해야 해요. 그런데 비어있는 공간은 ‘어땠을까’ 하면서 봐주셨으면 해요. 안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꾸민 거죠. 그런 정도의 창작은 대중들도 열린 마음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한 줄의 역사와 영화적 상상력이 만나 탄생된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 지난 26일 개봉해 관객몰이를 시작한 이 영화를 최민식은 대중들이 어떻게 바라보길 원할까.

“허진호, 한석규, 최민식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부담 없이 보셨으면 해요. 제목이 ‘천문: 하늘에 묻는다’라 젊은 친구들이 봤을 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무겁고, 심각하고 골치 아픈 게 아닌 그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들으러 가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으면 해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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