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석규의 벗, 어머니와 최민식 [인터뷰]
입력 2019. 12.31. 15:29:26
[더셀럽 전예슬 기자] 한 역할을 두 번 맡기란 쉽지 않다.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과 결국 같은 결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위험 요소가 있다. 하지만 한석규에겐 달랐다.

한석규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에서 세종 역을 맡았다. 지난 2011년 방송된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해 그 해 연기대상을 받은 그가 8년 만에 다시 세종으로 돌아온 것. ‘뿌리깊은 나무’에서 훈민정음 반포와 집현전 학사 살인사건으로 고뇌하는 세종의 모습을 연기했던 그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선 세종을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을까.

“집 안에서 몇 째로 태어났냐는 것은 엄청난 영향을 줘요. 부모입장에서는 첫째가 태어났기에 부모가 되잖아요. 세종 이도는 셋째로 태어났어요. 세종은 엄마를 엄청나게 좋아했을 거 같아요. 우리도 엄마만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을 품잖아요. 말하는 것, 먹는 것, 그리고 피해야하는 것 등을 엄마를 통해 배우고 영향을 받아요. ‘이도란 사람에게 있어 엄마의 영향은 무엇일까.’ 그래서 이도와 엄마의 관계를 풀어봤어요. 전에는 이런 생각을 못했어요.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이도를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장영실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돼요. 백성들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이 뭘까를 생각하고 장영실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죠. 이런 부분을 더 만들면 (역할을) 살리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최민식)의 관계를 집중한다.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이 그의 꿈을 실현 시켜줄 장영실을 만나 함께 하늘을 보며 같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군신관계를 넘어 꿈을 함께 이루는 ‘동반자’의 모습과 같다.

실제 같은 대학 동문으로 학창시절부터 30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온 한석규와 최민식. 두 사람은 1999년 개봉된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함께 열연, 우정의 진정성에 힘을 싣는다. 최민식의 인터뷰에서도, 한석규의 인터뷰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기도.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으로 반응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면 민식이 형은 ‘석규야, 내가 생각할 땐 그런 것 같애’라고 하세요. 그럼 저는 ‘아, 그래요’라고 하죠. 이런 점이 비슷해요. ‘형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도 그런데’라고 답하는 거죠. 그게 세종과 장영실이에요. 이번 작품을 통해 그 관계가 견고해진 건 아니에요. 떨어져있던 시간이 길었던 적도 있죠. 40대는 혹이 많은, 불혹의 나이라고 하잖아요. 혹한이 많은 나이가 40대에요. 관심사는 같은데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달라요. 민식이 형이 표현하고 완성해내는 건 사람이 사는 것과 스타일인데 제가 하는 것은 조금 달랐죠. 그렇지만 ‘다르다’라고 표현할 순 없어요. 결국 같은 거예요. 민식이 형은 그렇게 표현한다면 저는 단어로 표현했던 거죠. 결국 사람이라는 건 같은 거예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벗’이 아닐까. 왕과 관노라는 엄청난 신분의 벽을 허물고 같은 꿈을 이뤄가는 세종과 장영실. 자신들을 가장 잘 알아주는 ‘벗’은 서로였다. 그렇다면 한석규에게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벗’은 누구일까.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였어요. 말이 필요 없이,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교감, 소통을 덜 한 엄마와 자식도 있겠지만 저는 막내였기 때문에 엄마와 소통을 많이 했어요. 엄마와 저는 무한한 관계였던 거죠. 배우를 하게 된 것도 유전적인 영향이 있다면 분명 뭔가가 있긴 있을 거예요. 저와 민식이 형이 대학공연을 한 게 있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러 오셨어요. 민식이 형이 주연이었고 저는 친구 역이었죠. 어머니가 ‘내 눈에는 너희가 잘해 보이더라. 밥은 먹겠다’라고 하셨어요. 진짜 민식이 형과 제가 (연기로) 밥은 먹더라고요. 제가 또 3년 정도 일을 안했어요. ‘왜 일을 안 하냐’라고 하시기에 ‘뭐가 없어요’라고 하니까 어머니께서 ‘야 이놈아, 돈 버는 게 예술이지’라고 하셨어요. 그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으니까.”

데뷔 후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길을 걷고 있는 한석규. ‘천문: 하늘에 묻는다’로 2019년을 마무리 지었던 그가 2020년에는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로 시청자를 만나고자 한다. 꾸준히, 쉼 없이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는 말로 긴 여운을 남긴 그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연기, 액터(Actor)라는 직업을 가졌기에 ‘사람은 도대체 뭘까’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달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궁금함에서 하는 거죠. 비하하는 시선이 아니에요. 좋은 점부터 나쁜 점까지 생각하죠. 그래서 ‘죽어야 끝나는 공부다’라는 말이 있어요. 즉 나에 대한 탐구죠. 액터는 남을 만드는 일을 해요. 저는 남에 대한 관심이 20대 때부터 많은 편이었죠. 캐릭터라는 남을 만드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고 또 하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결국 연기는 내가 하는 거고, 내가 생각하는 거였죠. 나를 벗어나는 연기는 결코 할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상상 안에서 하는 거니까 내 연기가 좋아지려면 내가 좋아져야겠다는 생각이죠. 그렇다면 내가 좋아진다는 건 뭘까요. 연기를 잘 한다는 건 뭘까요. 후배들에게도 물어봐요.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툭툭 나오는 대답들이 있잖아요. 연기를 업으로 삼고 그것에 대해 계속 잘해보겠다고 매달려 아등바등 해보고. 지금도 그래요. 연기 범위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거죠.”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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