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배경…결말은?
입력 2020. 01.27. 14:11:06
[더셀럽 김희서 기자] '1987'이 방영된 가운데 영화 배경이 된 실제 사건들이 화제다.

27일 오후 1시 10분부터 영화 채널 CGV에서 '1987'이 방송됐다.

'1987'은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7'은 개봉당시 누적 관객수 723만 2,387명을 동원했으며 관람객 평점 9.31을 기록했다. 김윤석, 하정우, 여진구,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이 출연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의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처장은 조반장(박희순)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고 하면서 알려진 일들을 그린 영화다.

한편 스토리 전개의 발단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 받던 중 고문으로 숨진 사건이다. 당시 수사요원은 서울대학교의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수배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었던 박종철을 조사하던 중 물고문을 가했다. 그러나 물고문 도중 박종철의 상태가 이상하자 즉시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에서 의사 오연상 씨를 불렀으나 오 씨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박종철은 사망한 뒤였다.

이에 경찰은 1월 14일 증거인멸을 위해 보호자와 이미 합의를 했다며 서울지검에 시신의 화장을 요청하지만 거부되었다. 그리고 1월 15일 석간신문에 조사받던 학생이 쇼크사했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경찰의 가혹행위 가능성이 제기되자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 군의 변사 사실을 공식 시인했으나 사인을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다.

이후 단순하게 사건을 덮으려는 듯한 경찰의 입장에 국민들과 대학생들은 분개했고 그 해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은폐·축소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었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6월 9일 연세대생이었던 이한열 군이 시위 과정의 부상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민주화 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더셀럽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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