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사냥의 시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고민을 건들인 영화” [인터뷰]
입력 2020. 05.13. 11:28:49
[더셀럽 전예슬 기자] “결과에 있어 만족 할 수도 있고,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회피하거나 도망갈 수도 있는데 ‘그 선택에 있어 결과, 다음의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 느꼈어요.”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18년 7월 크랭크업한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일찌감치 촬영을 마쳤음에도 후반 작업에 몰두하면서 개봉일이 차일피일 미뤄졌던 바. 이후 올해 2월, 극장 개봉을 확정 짓고 언론시사회부터 인터뷰, 행사 등 다양한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커지며 다시 한 번 개봉일이 연기됐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사냥의 시간’은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배급사 리틀빅픽쳐스와 해외세일즈를 담당한 콘텐츠판다가 갈등을 겪기도. 우여곡절 끝, 양측은 합의에 도달했고 지난달 23일 ‘사냥의 시간’은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2월 말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후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된 후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사랑하는 플랫폼 넷플릭스엣 ‘사냥의 시간’이 공개될 수 있어 감사하고 기분이 좋네요. 공개된 후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많이 고생했겠다, 심장 졸이며 봤다’ 등 반응이 많았죠. 국내 팬들, 영화 보신 분들의 리뷰뿐만 아니라 190개국에서 동시에 나온 거라 해외 반응들이 바로 오는 게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전에는 무대 인사를 돌거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들만 공유했다면 지금은 전 세계 ‘사냥의 시간’을 본 사람들이 많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더라고요. 영화적인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를 즐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죠.”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물이다. 윤성현 감독이 구축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스토리 전체에 감도는 붉은 빛의 컬러를 바탕으로 낙후된 건물과 낡은 텍스쳐를 극대화해 무국적의 낯선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제훈은 이러한 가상의 공간을 연기로 어떻게 그려나갔을까.

“시나리오를 읽을 땐 못 느꼈다가, 총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다 보니 가까운 미래를 설정해갔어요. 무언 가에 쫓기고, 몰리는 상황에서 지금 현실과 도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나리오에서는 읽히지 않았던 거죠. 스토리보드를 보고 현장에서 구현된, CG를 통해 구축된 세계관을 보고 ‘후반 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놀라웠어요. 이런 비주얼과 세계관을 우리나라에서 본 적 있었나 싶었죠. 그런 시도를 한 부분에 있어 대단해요. 스태프들이 자랑스러웠고요.”

이제훈은 탈출을 갈망하며 위험한 계획을 설계하는 준석 역을 맡았다. 그는 친구들을 지옥으로 끌어들이면서 후반부에는 절망적인 감정 연기를 폭발시켰다. 준석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저 스스로를 극강으로 몰아 붙였던 것 같다”라고 말문을 이어갔다.

“이 세계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위험한 동행을 시작해요. 이것밖에 답이 없고, 이것을 해내면 목표에 댛나 동질성을 준석을 통해 이입했죠. 준석은 수단과 방법에 있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거기에 가면 자신가 꿈꾸는 것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가는 인물이잖아요. 그가 가진 꿈, 목표에 있어 저를 투영하면서 계속 갔어요. 그 계획을 성공하지만 중간부터 쫓고 쫓기는 입장이 되면서 굉장히 무섭고, 두렵고, 이러한 고통들을 제 안에 심었던 것 같아요. 한(박해수)을 직접 만나게 되는 지하주차장 신에서는 한이 저에게 총을 겨누잖아요. 그 순간은 진짜 총에 총알이 들어있고, 손가락으로 까딱하기만 하면 총알이 발사돼 죽겠구나 생각하면서 저를 극강으로 몰아넣었어요. 죽음을 앞둔 상황을 상상한 거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도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죽음을 앞둔 상황이고 계속 도망을 가야하니까. 촬영 전반부에선 희희낙락하고 즐거웠다면 후반부에서는 ‘그만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언제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자체도 시간 순으로 찍어서 그런지 준석이 느끼는 감정의 과정을 실제로 느꼈어요.”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과 이제훈의 약 10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바. 지난 2010년 개봉한 ‘파수꾼’을 통해 윤성현 감독을 처음 만났던 이제훈은 ‘사냥의 시간’에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수꾼’ 이후 저라는 사람, 인간 이제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윤성현 감독 같아요.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부분에서 깊게 이야기를 나누는 형제 같은 사이죠. 뭐라고 할 필요가 없어요. 눈빛만 봐도 그가 원하는 것이 나왔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그가 만족하지 못하면 오히려 제가 더 자처해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가기도 했어요.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 설명할 필요가 없던 거죠. 그럴 정도로 연기를 하는데 있어 믿어 의심치 않아요. 몸과 마음을 바쳐 쏟아내는 것조차 지지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영화적인 동지를 얻은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한 사람이죠. ‘사냥의 시간’이라는 두 번째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것도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윤성현 감독의 세, 네 번째 작품에도 나오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사냥의 시간’은 지난 2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베를리날레 스페셜갈라 섹션에 초청됐다. 상업성이 짙은 영화 또는 유명 영화인을 조명하는 비경쟁 부문으로 한국 영화가 이 부문에 초청받은 일은 처음이다. 이제훈은 당시를 회상하며 벅찬 소감을 이어갔다.

“눈시울이 불거지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봐왔고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 나온 작품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런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을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사냥의 시간’으로 베를린에 가게 돼 꿈만 같았어요. 가기 전부터 설렜고, 1600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들었을 때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제에 가고 싶어 하는구나를 새삼 크게 느꼈죠. 좋은 작품으로 언어는 다를 수 있을지언정, 한국영화를 알릴 수 있는 영화제에 제 작품으로 가면 좋겠다, 그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어요. 울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눈물을) 엄청 참았던 것 같아요. 하하.”

‘사냥의 시간’을 바라보는 이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청년들의 박탈감,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지옥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지옥을 빗댄 한국사회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생존과 돈, 탈출을 갈망하고 있다. 영화는 이 현실을 벗어나고 외면하는 게 전부가 아닌, 맞서 싸울 필요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보시는 분들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인생은 선택하는 거잖아요. 선택이 결과로 오게 돼요. 결과에 있어 만족할 수도 있고,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회피하거나 도망갈 수도 있는데 그 선택에 있어 결과, 다음의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 느꼈어요. 배우로서 인생을 꿈꾸고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도전을 하고, 지금도 역시 그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자격이 있고 노력을 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거죠. 앞으로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가려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건드려준 게 아닌가 싶어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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