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감독 “‘사라진 시간’은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느낌의 영화” [인터뷰]
입력 2020. 06.26. 14:55:59
[더셀럽 전예슬 기자] 33년 만에 꿈을 이루게 됐다. 영화계에 몸담으며 오랜 시간 연출의 꿈을 품어왔던 정진영. 직접 각본을 쓰고 준비해 관객들에게 선보인 첫 번째 작품 ‘사라진 시간’이다.

연극, 영화, 드라마는 물론, 시사교양 프로그램 진행까지 전방위 활약을 펼친 정진영은 신인 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졌다. 연기에 이어 작품까지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뒤따르는 부담감과 아쉬움은 없었을까.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에요. 하하. 제가 모르던 제가 담겨있는데 그걸 포착해서 추궁하는 느낌이죠. 이준익 감독님께서 ‘개봉하면 떨릴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붙이고 싶은 장면도 많았어요. 돌아서면 고치고 싶고, 아쉬움이 당연히 남아 있었죠. 다른 감독님도 다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아직 너무 초짜라 세련된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영화의 의도를 전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이 영화는 설명이 많지 않은 영화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설명들을 영화 어딘가에 여기 저기 숨겨 놨죠. 이야기는 계속 툭툭 던지고, 관객들이 서핑하면서 따라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했다가 그런 식으로 전개하고 싶었던 거죠.”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설정은 ‘삶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을 미스터리 드라마 형식을 빌려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다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뭐지?, 나는 뭘까?’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크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신나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하지 못하는, 그런 갈등들은 모두에게 있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삶의 경험 속에서 느끼는, 진짜 나와의 충돌을 살면서 계속 거듭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의 제목은 당초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였다. 그러나 개봉을 앞두고 ‘사라진 시간’의 제목으로 변경된 것. 정진영 감독은 라디오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때 카펜터즈의 ‘클로즈 투 유’가 나왔죠. 영화의 제목으로 쓰고 싶다고 했지만 못했어요. 노래를 사와야 해서 제목으로 포기한 거죠. 다른 제목도 생각해봤는데 문학적이었어요. 영화는 선명하게 보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사라지고 남은 시간’은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제목이 길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사라진 시간’은 어떠냐고 하시길래 어울리는 것 같아 결정하게 됐어요.”

정진영은 시나리오 구상을 시작할 때부터 조진웅을 머릿속에 주인공으로 그리며 썼다. 그는 형구 캐릭터에 최적화된 0순위 배우였다고. 정진영은 평소 작품을 통해 봐왔던 조진웅의 액션이나 말투 등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구상했고 초고를 탈고하자마 조진웅에게 작품을 건넸다. 제안을 받은 조진웅은 시나리오를 받은지 단 하루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대사 내용, 말투, 동작 등이 알고 있는 게 아니면 떠올리기 힘들잖아요. 시나리오를 작성할 땐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며 대사를 외치고 동작을 하는 게 필요해요. 제가 배우였을 때 감독님들이 ‘너를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썼어’라고 하시면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하하. 그래서 진웅이도 이 영화를 할 가능성을 적게 봤던 거죠. 바쁘고, 톱 배우고, 이 영화는 환경이 다르니까요. 보낼까말까 망설였어요. 보내고 거절당할 거면 빨리 거절당하자는 마음에 초고가 나오자마자 시나리오를 보냈어요. 다음날 바로 ‘하겠다’라고 해서 너무 놀랍고, 고마웠어요.”

‘사라진 시간’은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라는 정진영의 생각과 의도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매듭짓지 않은 결린 결말에 해석은 다양하게 풀이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도 다수 삽입돼 있어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익숙하지 않은, 다소 낯설 수 있는 것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분들이 고라니 장면에 대해 물으시더라고요. 영화의 맨 첫 장면에서 이장의 멘트가 나와요. ‘고라니를 조심하십시오’라고. 그 고라니가 후에 등장하는 고라니 장면이에요. 설명을 다 했는데 어딘가 심어 놓은 거죠. 이 영화는 많은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익숙한 영화들은 친절하게 설명을 하잖아요. ‘사라진 시간’은 설명들을 숨겨놓고 관객과 함께 찾고 싶었어요. 그런 항해를 하고 싶었던 거죠. 애초에 시작을 이상한 영화를 한 거예요. (웃음) 전에 썼던 시나리오를 봤는데 관습적으로 써서 버렸던 적 있어요. 저는 다른 식의 정서나 발상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죠. 이건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어요. 망실 당할 각오를 가지고 용기를 냈는데 자꾸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장르의 법칙을 생각하지 말자, 내가 느끼는 대로 투박하게 생각하자, 나중에 비판을 받을지라도 틀리든, 맞든 계속 가자고 생각했죠.”



‘사라진 시간’은 ‘갑자기’ 시작되고 ‘갑작스럽게’ 일들이 벌어진다. 또 그렇게 마무리 된다. 이런 형식으로 영화를 전개한 것은 결국, ‘사람의 삶’과 동일하게 바라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갑자기 죽고, 갑자기 삶에 불행이 오기도 해요. 이 황당한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이상한 이야기를 믿어줘 라고 앞뒤에 붙이면 ‘사라진 시간’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죠. 툭 하고 들어가고 싶었어요. 이건 저의 욕심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의도가 전달 된지 모르겠어요. 그런 식의 발상을 하고 싶었던 거죠. ‘자유롭고 싶었다’라는 말이 적합할 것 같아요.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지닌 인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라진 시간’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미묘한 맛’이다. 틀에 갇히지 않았다라는 점에서 신선함을 남긴다. 그러나 익숙치않은 탓에 아직은 낯설게 다가온다. 정진영은 영화를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에게 “‘사라진 시간’은 ‘뉴 영화’”라고 당부했다.

“새롭고, 이상하지만 함께 같이 조그마한 배에 올라 달라진 파도를 넘는 항해를 하고 싶으신 분은 ‘사라진 시간’을 보러 와주셨으면 해요. 뉴웨이브의 영화가 아니에요. ‘뉴 영화’죠. 하하. 이 영화는 장르의 프레임으로 보지 않고 첫 시작부터 가이 그 공간을 따라가는 영화로 보셨으면 합니다.”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에이스메이크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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