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VIEW] 논점 모르는 기안84, 언제까지 ‘재미’로 치부하나
입력 2020. 08.14. 11:52:57
[더셀럽 김지영 기자] 폭넓은 아량으로 한, 두 번은 이해하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한, 두 번이 아닌 게 문제다. 언제까지 웹툰작가 기안84는 “재미를 위해서였다”고 두루뭉술하게 사과하고 넘어갈 텐가. 매번 말로만 사과하는 그의 자중 없는 태도에 네티즌들도 이젠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 태세다.

발단은 최근 연재된 그의 ‘복학왕’ 304화 ‘광어인간’ 편이었다. 해당 내용에서 인턴 봉지은이 회식 자리에서 배 위에 얹은 조개를 깨부수는 장면이 그려졌다. 앞선 회차에서 봉지은은 “누가 뽑아준대?”라는 40대 노총각 팀장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자신의 배 위에 조개를 얹고 깨부순다.

해당 장면과 함께 웹툰 속에는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이나 스펙, 노력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닌 그녀의 세포 자체가 업무를 원하고 있었다”라는 설명이 이어진 뒤 봉지은이 기안 그룹에 정식 입사된 것으로 묘사됐다. 이후 마지막 장면에서는 40대 노총각 직원과 봉지은이 교제하는 사이임을 나타냈다.

웹툰을 확인한 네티즌들은 거북한 반응을 드러냈다. 스펙이 없고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던 여자 캐릭터가 회사 인턴에서 정직원이 됐고, 40대 상사와 성관계를 했다고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 뒤 교제하는 사이로 그려졌기 때문. 기안84의 웹툰은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장르가 아니며 청소년과 사회초년생들의 ‘웃픈’ 일상을 다뤄 웃음과 공감 등을 자아냈으나 이번 봉지은의 취업 에피소드는 도를 넘었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더군다나 웹툰 속 여자 캐릭터의 능력과 평가는 절하하고 애교와 성(姓)으로 목적을 달성한다는 구시대적인 전개 흐름은 다수의 네티즌들을 분노케 했다.

기안84를 향한 분노는 네이버 웹툰 댓글, 커뮤니티를 넘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이어졌다. ‘복학왕’을 접한 청원인은 웹툰 연재 중지를 요구하면서 “웹툰 작가로서 정체성과 의식을 가지고 웹툰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청원은 지난 11일에 게재됐고 약 3일 만에 청원인 8만 명을 넘어섰다.

사태가 커지자 ‘복학왕’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고 기안84도 ‘광어인간’ 2회 말미에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입장문을 덧붙였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됐다”며 “수달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을 식당 의자를 젖히고 봉지은이 물에 떠 있는 수달로 겹쳐지게 표현해보고자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독자분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도 추가 수정했다.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기안84가 직접 해명을 했으나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대다수다. 왜 능력이 부족한 여성 캐릭터가 스펙을 높이지 않고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는지, 정직원을 원하는 인턴 봉지은의 전개가 풍자로 표현된 게 상사와의 열애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더군다나 네티즌이 비난한 ‘광어인간’의 주된 핵심은 봉지은이 애교로 상사를 사로잡고 결국 잠자리로 취업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전개다. 그러나 기안84 이에 대한 반성과 설명은 전혀 없이 “독자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을 추가 수정했다”고만 답한 것으로 보아 그는 여전히 문제의 쟁점을 모르는 듯하다. 그가 수정을 했다는 내용 역시 상사는 봉지은이 귀여워서 사귀게 됐고, 이를 들은 주인공 우기명은 뜬금없이 스킨십 진도를 묻는다. 이에 상사는 “ㅋ”라고만 답하며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구독자에 ‘의해’ 수정과 추가를 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그의 논란은 현재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8일 연재한 ‘복학왕’ 249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뭇매를 맞았다. 한국인 생산직 근로자들은 허름한 숙소를 보고 불만을 토로하는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같은 숙소를 보고 “근사하다 캅”이라며 좋아한다.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다름없다.

또한 7일 연재한 ‘복학왕’ 248회에서는 장애인 비하에 휩싸였다. 극 중에서는 청각장애인 캐릭터 주수인이 닭꼬치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딱꼬티 하나 얼마에오?” “하나마 머거야디” “마이 뿌뎌야디” “딘따 먹고 딥었는데" 등 발음이 어눌한 청각장애인의 말투를 희화화했다.

이에 전국장애인철폐연대는 주시은 캐릭터를 표현한 것에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고취시킨다”며 “청각장애인을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기안84는 지속적으로 특정 장애에 대한 광고를 통한 차별을 계속해왔고 그 차별이 쌓이고 쌓여 이번 결과물까지 만들어진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때도 기안84는 “성별, 장애, 특정 직업군 등 캐릭터 묘사에 있어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작품을 재밌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신중을 가하겠다”고 사과했다.

이렇게 사과하고 약 한 달 만이다. 자신이 성별, 장애, 특정 직업군에 대해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왜 기안84는 자중하지 못하고 매번 “재밌게 표현하려했다”고만 사과하나. 스스로 콘티를 짜고 이야기 전개를 생각하며 그림을 직접 그리는 웹툰 작가가 ‘재미’를 위해서 그렸던 내용들이 여러 번 지적을 받았으면 수십 번 고민하고 더욱 신중을 가해 작업했어야 했다.

그가 재차 언급하는 ‘재미’는 기안84만 추구하는 게 아니다. 코믹 장르로 승부를 보고 있는 대다수의 웹툰 작가들은 그처럼 이런 내용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논란을 사지 않기 때문. 그가 말하는 ‘재미’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오히려 대다수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그 재미는 비하에서 비롯된 웃음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터다. 더 이상 성별, 외모, 장애, 인종 등을 희화화하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대중은 없고 말뿐인 태도를 이어나간다면 그를 원하는 구독자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더셀럽 DB, 웹툰 '복학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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