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희 감독이 밝힌 ‘승리호’ A to Z [인터뷰]
입력 2021. 02.23. 16:30:44
[더셀럽 전예슬 기자] ‘극장에서 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연 영화 ‘승리호’. 그 중심엔 조성희 감독이 서있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베일을 벗은 ‘승리호’는 전 세계 동시 공개 이후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과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바. 특히 공개 2일 만에 해외 28개국에서 1위, 80개국 이상에서 TOP10 순위에 들며 해외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냐는 말에 조성희 감독은 함께 고생한 스태프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말문을 이어갔다.

“스태프들이 고생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미술, CG, 사운드팀 등 빠짐없이 스태프들이 너무 많은 열정을 불태워주셨죠. 그런 점들을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거라고 생각해요. 우주선이 날아다니는 영화라고 하면 할리우드의 영화에 눈높이가 익숙해져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떨어져 보이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승리호 선원인 태호(송중기)는 과거 딸을 잃어버린 과거가 있고, 어른들의 욕망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기존 한국의 상업 영화와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신파로 갈무리 됐다는 점이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가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있었어요. 승리호 선원들은 진짜 가족이 있는데 잃어버렸고,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는 게 이야기 안에 있다고 생각했죠. 주인공 태호도 친딸이 아니지만 친딸로 받아들여요. 이런 새로운 가정의 형태가 되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진짜 가족을 떠나보내고 가슴에 묻는 게 영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파를 피해라보려 했는데 결과적으론 그런 장면들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신파 서사라고 느끼신다면 저의 고민이 깊지 않았다는 걸 반성하게 됐어요. 저는 (영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음 영화를 할 때는 그런 부분에 신경을 써 만들겠습니다.”



조성희 감독은 ‘승리호’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창조하기 위해 10년 가까이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조 감독의 창의력은 1000여 명의 VFX 전문가와 함께해 현실감 넘치는 우주로 탄생됐다.

“프리 단계부터 효율적으로 작전을 세우자고 이야기했어요. 너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능하고, 효율적이면서, 효과를 크게 구현할 수 있는 작전을 세웠죠. 중점을 둔 건 실제 촬영한 화면과 풀CG 화면이 서로 어울리도록 하고, 화면 컷이 갑자기 넘어가면 다른 영화처럼 보일 수 있으니 그런 것들을 신경 썼어요. 우주공간 안에서 날아다니는 장면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인가, 많은 요소들이 염두 되어야 하는데 빠르게 하면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찾으려 했죠. 물체에 빛이 닿을 때 어떻게 자연스러운지, 그리고 삶이 쉽지 않은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우주 추격전 같이 속도감 있고, 거칠며 박력 있길 원했어요. 우주선의 유려한 비행과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하면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승리호’의 시간적 배경은 2100년대가 아닌 2092년이다. 이 시기에 지구는 황폐해졌고, UTS라는 새로운 보금자리가 위성 궤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사이 우주 공간을 누비는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가 유유히 자리한다. 먼 듯 가까운, 근미래인 2092년을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중력을 극복하고, 인공적으로 중력을 만들어 떠다니는 게 아닌 걸어 다니며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로봇이 나오고. 이런 것들이 있으려면 적어도 몇 십 년, 먼 미래일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2100년대로 가지 못한 건 한편으로는 아직도 수작업을 하는 세상, 우주선 수리 같은 건 손으로 해야 하고, 수레도 끌고 다니며 그런 것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한 세기를 넘어가지 않았으면 했죠. 21세기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2092년으로 정하게 됐어요. 그걸 위해 다른 영화, 시대가 확장된 SF 영화들의 기술수준을 봤을 때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에 연도를 선택하게 됐죠.”

‘승리호’의 주인공 태호 역을 맡은 송중기. 두 사람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성희 감독의 첫 상업영화 ‘늑대소년’에 출연한 송중기는 당시 조 감독이 ‘승리호’를 구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9년의 시간이 지난 후 ‘승리호’로 다시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이다.

“처음 작업 때보다 서로 편해진 것 같아요. 7~8년이 지나긴 했지만 중간 중간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죠. 오래 전 같지 않았어요. 처음 뵀을 때보다 소통에 있어 조금 더 편했어요. 사람 송중기, 배우 송중기는 변함이 없었죠. 그때처럼 늘 밝고, 주위사람들과 친화력을 가지고 잘 지내고, 현장을 항상 좋은 분위기로 만들려고 노력해줬어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구나’를 느꼈죠.”



광활한 우주에 한국적 정서를 결합시켜 탄생한 4명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조종사 태호, 나이는 가장 젊지만 승리호의 브레인이자 전략가 장선장,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기관사 타이거 박, 남다른 장래 희망을 가진 잔소리꾼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까지. 조성희 감독은 인물들의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구축해갔을까.

“굉장히 긴 역사들이 있는데 영화에서 언급되진 않아요. 중요한 건 ‘모두 다 갈 곳 없는, 버려진, 낙오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면 했죠. 어디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염두하고 만든 것이죠.”

오합지졸 4명의 승리호 선원들에 우주쓰레기를 접목시킨 것도 새롭게 다가온다.

“친구와 밤에 술을 마시다 그 친구가 최근 기사를 읽었다며 우주쓰레기가 우주 산업의 위험한 문제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재밌게 느껴졌어요. 찾아보니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90년대 초부터 그런 소재를 사용하더라고요. 게임 등에서도 많이 있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로 쓸 수 있겠는데?’ 싶었어요. 영화의 주인공이 꼭 멋있는 옷을 입은 영웅이 아닐 수 있겠다는 힌트를 얻었어요. 우주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면 한국 사람으로도 허황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 이미 있는 것들에 용기를 얻었고, 그때부터 이야기로 쓰기 시작했어요.”

‘승리호’의 공개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한국 최초 우주 SF 블록버스터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 오랜 시간 발목을 잡아왔던 기술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 ‘승리호’를 기점으로 이전보다 다양한 소재, 독특한 상상력의 이야기들이 스크린에 펼쳐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까지. 여러 모로 ‘도전’을 한 ‘승리호’는 조성희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같이 참여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뿐이에요. 또 이 작품을 봐주신 관객분들 모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승리호’는 제가 영화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처음 쓴 장편 시나리오에요. 영화화 돼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자체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실제로 만든 과정도 꿈만 같죠. 시간이 지나면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저를 선명히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웃음)”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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