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 연우진, ‘무미건조한 색’으로 창석을 만든 이유 [인터뷰]
입력 2021. 04.09. 07:00:00

'아무도 없는 곳' 연우진 인터뷰

[더셀럽 전예슬 기자] 섬세하다. 눈빛, 목소리, 작은 행동 하나까지. 연우진이었기에 가능했던 역할이 아닐까. 창석이 연우진이 되고, 연우진이 창석이 됐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감독 김종관)을 통해서.

기자는 최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아트나인에서 연우진을 만나 ‘아무도 없는 곳’과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도 없는 곳’은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누구나 있지만 아무도 없는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조제’,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까지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과 감성적인 영상미를 선보인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의 완성본을 언론시사회 하기 일주일 전에 봤어요. 감독님에게 편집본을 달라고 했더니 이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극장에서 봤더니 먹먹하면서도 여운이 짙었고, 생각할 지점이 많았어요. 영화의 분위기도 감독님의 색깔과 하고자하는 느낌들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영화의 완성본을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감독님의 글 속에서는 여백이 주는 공허함이 많이 느껴졌는데 영화에서는 여백마저 그 사이에 어떤 느낌들과 분위기로 꽉 채워져 포인트를 잘 살려낸 듯싶었죠.”

연우진이 분한 창석은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다.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창석은 커피숍, 박물관, 카페, 바 등 익숙한 듯 낯선 서울의 공간들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이야기를 듣고, 들려준다. 액션은 물론, 리액션이 필요했던 역할이기에 연우진은 창석을 어떻게 만들어가려 했을까.

“창석은 듣는 입장이에요. 대화할 때 저도 듣는 입장을 선호하는 편이죠. 그래서 저다운 모습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본연의 것들을 지워내려고 했죠. 그러다보니 마음을 비워내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의 작품은 독특한 문어체와 꾸며낸듯한 연기가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톤이라 전반적으로 준비하는데 있어 (역할이) 잡혀있지 않으면 튀거나 어색해보일 수 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한 준비과정에 있어 캐릭터를 순수하게 이해하려 했죠. 뭔가 묻히지 않고,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자체가 ‘비워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어색하고 어려울 수 있었는데 진실 되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앞서 ‘더 데이블’을 통해 김종관 감독과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연우진. 그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김종관 감독과 재회했다. 김 감독을 통해 인생에 대한 태도, 작품을 바라보는 진솔함과 배우의 마음가짐에 대해 배웠다고 고백할 만큼 무한한 신뢰를 드러낸 그다.

“감독님과 작품 얘기를 깊게 하진 않아요.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나 이끌어 가는데 있어 저도 독특한 경험을 했죠. 감독님은 만나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묘하게 분위기에 젖어들게끔 해주셨어요. 둘이서 음식점에서 얘기하고,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감독님의 영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이런 것들이 묘한 경험이었어요. 감독님의 의상을 입고 찍었던 신들도 있었어요. 이런 과정이 말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웠던 과정이었죠. 그래서 독특한 경험이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도 없는 곳’은 며칠 동안 한 명의 인물이 여러 사연을 통과해 나간다. 기억과 상실, 죽음, 늙음의 소재를 뭉쳐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창석을 비롯한 인물들의 전사나 과거가 드러나지 않아 이해하는데 노력이 뒤따른다.

“모든 인물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허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죠. 저는 작품 자체가 창석의 소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각자 어떤 시점에 주인공이 되는 인물을 만나고 또 다른 화자의 소설인 거죠. ‘아무도 없는 곳’은 창석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보다는 각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생을 빛낼 수 있게끔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무미건조하게 캐릭터에 임했죠. 창석은 개인적인 전사와 아픔들이 있지만 최대한 억누르며 표현했어요. 처음 톤을 잡을 때도 표면적으로는 상실과 고뇌, 고민들이 있지만 특정한 선을 넘지 않는 선 내에서 감정들이 크게 자리 잡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한, 다른 색을 표현해낼 수 있도록 무미건조한 색으로 캐릭터를 잡았어요.”



비워내고, 덜어낸, 그리고 무미건조한 색을 지닌 창석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함께 호흡했던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첫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지은 배우님은 처음부터 미영 역으로 있어주셨어요. 이지은을 생각하면 미영만 떠오르죠.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시간의 흐름을 가지고, 마음속에 내제된 감정을 꽉 채워 현장에 와주신 배우님이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고 ‘대단하다’라고 느꼈죠. 다른 배우들과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에요. 네 분의 연기를 감탄하는 마음으로 바라봤죠. ‘더 테이블’에서는 한 명과의 에피소드지만 이번엔 다른 배우들을 만나니까 어떤 연기를 할지 궁금함이 있었어요. 상대 연기를 보는 재미도 컸죠. 연기 경력을 떠나 배우와 영화,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솔직하셨어요. 그런 것들이 감독님과 닮아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도 녹아들면서 어울림의 효과를 봤어요.”

‘아무도 없는 곳’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길 잃은 이야기다. 저마다의 마음 속 ‘아무도 없는 곳’이 채워지고, 비워짐에서 치유와 위로를 전한다. 연우진에게 ‘아무도 없는 곳’은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의 시간도 지나가면 지나간 시간이 되겠지만 변곡점에 있어 우연치 않게 감독님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서 감독님을 만났기에 이 시간 또한 지나가면 감사한 추억이 되겠죠? 인생을 고민하는 부분에서 감독님은 바른 길로 인도해준, 추억의 시간을 마련해주셨어요. 감독님을 만난 게 필연적인 것 같기도 해요. 중요한 쉼표를 찍고 간다는 느낌이죠. 잊혀져가는 상실의 시대에서 관객분들도 조그마한 위안을 받으셨으면 해요.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길 바라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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