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자산어보’에 색체를 거둬낸 이유 [인터뷰]
입력 2021. 04.14. 07:00:00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인터뷰

[더셀럽 전예슬 기자] 영화를 보기 전부터 궁금했다. 이준익 감독은 왜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을 조명하고,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을 발견했을까. 이러한 물음의 답은 명쾌했다. ‘사도’ ‘동주’ ‘박열’ 등 작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던 것.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영화다. 신분도, 지향점도 달랐던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에서 이 영화를 연출했다.

“역사 공부를 하면 조선의 근대에서 막혀요. 각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조선의 근대가 다르잖아요. ‘자산어보’의 시작은 농민혁명인 동학에 관심을 가지면서예요. 그 전에 서학이 있더라고요. 이승훈이 세례를 받아와 정약용, 정약전에게 세례를 줘요. 이게 서학인 거죠. 정약용의 이야기를 하려니 16부작으로 해야 할 것 같았어요. 하하. 정약용의 옆을 보니, 정약전과 황사영이 있었죠. 그래서 정약전을 조명했고, ‘자산어보’ 책을 보고, 창대란 인물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완성까지 5년이 걸렸죠.”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정통 사극 ‘사도’, 평생을 함께 할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아낸 ‘동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독립투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강렬한 삶을 그려낸 ‘박열’ 등.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섬세하게 담아낸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을 스크린에 불러들였다.

“현재를 투영하거나 반영하지 않을 거면 사극을 찍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나는 역사 속에 어떤 사람과 맞닿아 있다는 걸 늦게 알았어요. 때로는 내가 박열인가, 후미코인가? 창대인가?라고 직대입이 가능하잖아요. 약전과 창대의 관계를 이입시켜 볼 수도 있는 거죠. 사실 200년 전, 2000년 전 사람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없어요. 기술이 바뀐 거죠. ‘사극은 멀다’라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시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사고를 가져야만 현재를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사극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자기 자신을 홀대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자산어보’ 속 정약전과 창대는 서로 다른 신분과 가치관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아낸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한 정약전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어류학서를 집필하기 위해 창대에게 서로가 가진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당시 신분 질서가 강했던 사회에서 정약전의 열린 사상을 드러낸다. 이질적인 두 사람이 서로의 스승과 벗이 되며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려낸 이준익 감독이다.



“시나리오는 평면 설계도에요. 완벽한 설계도는 있을 수 없어요. 그걸 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거죠. 선을 면으로 세우는 것을 배우가 해요. 이후 음악과 효과를 넣으면 ‘입체’가 되는 거고요. 이 영화의 축을 이루는 창대의 대사는 ‘자산어보’의 길이 아닌,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다고 해요. 배우들의 감정만 따라가도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죠. 쉽게 보려면 쉽고, 어렵게 보면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영화라고 할까요.”

‘자산어보’는 ‘동주’에 이어 ‘흑’과 ‘백’의 색체로만 채워진 영화다. 색체를 덜어내고 담백한 흑백으로 인물의 감정을 정직하게 담아낸다. 본질적인 형태가 더 뚜렷하게 전달되기에 그 시대와 인물의 이야기는 더 가깝게 느껴질 터. 그래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답고, 인물들의 감정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온다.

“색체를 거둬낸 이유는 ‘조선의 세련됨’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흑백은 컬러가 오기 전, 과거의 매체라고 생각하는 건 부정확한 거예요. 흑백을 보기 전엔 ‘지루할 것 같다, 예술영화 같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흑백은 세련되고, 새롭고, 특별한 것이죠.”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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