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형 가수’가 꿈”, 하이량의 ‘신청곡’ [인터뷰]
입력 2022. 05.24. 08:00:00

하이량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솔직함이 매력적이다. 털털하면서 사랑스러움까지 갖췄다. 허스키 보이스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트로트 팬들을 매료시킨 가수 하이량. 그가 한 번 들으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강한 ‘신청곡’으로 돌아왔다.

기자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하이량을 만나 신곡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청곡’은 댄스 트로트 곡으로 하이량의 독보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화려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다가오는 여름, 가요계를 시원하게 휩쓸고자 한다.

“과거에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추억을 회상하면서 언제든지 꺼내들을 수 있는 곡이에요. 그때를 기억하면서 의미를 담았죠. 마냥 슬픈 추억이 아닌, 아련한 추억을E 떠올리며 들을 수 있는 곡이에요. 그래서 가사는 슬픈데 멜로디는 신이 나요. 가사에 집중을 안 하고 들으면 신난다고 하는데 가사를 들으면 더 슬프게 다가오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빠르고 신나는 댄스 비트에 담았다. 역설적으로 슬픔이 느껴진다. 특히 후반부 후렴구의 달라지는 뭄바 리듬을 트로트에 도입, 신선함을 더했다.

“이 곡을 처음 받았을 때 예뻐서 건들이기 힘들다고 했어요. 가이드가 예뻐서 녹음하면서도 힘들었죠. 녹음 도중에 대표님이 중단시키기도 했어요. 제 목소리와 너무 안 울려서 편곡을 다시 가야한다고 하셨죠. 처음 곡이 너무 예쁜 선율이어서 제 목소리가 묻어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편곡을 다시 갔어요. 템포를 당기고, 악기구성을 다르게 했죠. 달리는 식으로 다시 했더니 제 목소리가 묻어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손대기 힘든 곡이었어요.”

이 곡은 박현빈의 ‘샤방샤방’, 영탁의 ‘찐이야’, 조항조의 ‘고맙소’, 금잔디의 ‘당신은 명작’ 등을 탄생시키며 큰 사랑을 받은 작곡팀 알고보니혼수상태와 작사가 사마천이 의기투합했다.

“작곡가님이 요청하실 때 ‘이량아 너도 과거에 첫사랑이 있잖아. 이별을 당하고, 아련함을 나타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공감을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련한 사랑이 없었거든요. 우스갯소리로 과거의 사랑을 생각하면 화 밖에 안 난다고도 했어요. 하하.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당하고, 술을 마신 뒤 노래를 한다고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기운 없이, 울듯이 불러야겠지 않냐고. 굳이 남자친구가 아니더라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딱 느낌이 왔어요.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면서 부른 거죠. 아빠와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부르니 공감되는 노래였어요.”

이별의 아픔, 추억을 담았지만 곡명을 ‘신청곡’으로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련한 추억을 언제든지 꺼내서 들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에요. 한 번 듣고 끝나는 곡이 아닌, 계속 들을 수 잇고, 언제든지 꺼내서 다시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해서 ‘신청곡’으로 지었죠. 원래 ‘신청곡’의 뜻이 다시 청하는 노래, 반복하는 노래에요. 그런데 한자 뜻을 다르게 했죠. 믿을 ‘신(信)’, 들을 ‘청(聽)’, 노래할 ‘곡(哭)’이라고 ‘믿고, 들을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에요.”




하이량은 지난해 3월 첫 앨범 ‘마이 데스티니(My Destiny)’로 데뷔해 ‘내팔자 상팔자’와 ‘그놈은 멋있다’로 사랑 받았다. 특히 그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2’와 ‘헬로트로트’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바. 연이은 경쟁 프로그램 출연이 부담은 되지 않았을까.

“신인이면 겁 없이 도전했을 거예요. 이 생활을 잘 알고, 겁이 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져있을 때 ‘미스트롯’에 나갔죠. 그전에는 어딜 가든 막내였는데 지금은 아니더라고요.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나갔더니 방송 경험도 없어서 더 위축됐어요. 가요제에 나갔을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가게 됐죠. ‘내가 진짜 될까?’란 생각이 커서 1라운드에서 화제가 될지도 몰랐어요. 그냥 경험 삼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경험 한 번 해보자고 나간 거였는데 말이죠. 가요제 경험은 많지만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보니까 분명 얻어지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전하는 자체만으로 경험이 된다. 하이량에게 도전은 경험이 됐고, 그 경험이 쌓여 ‘성장’이란 결과를 이끌어냈을 터.

“단체로 합숙을 하면서 맞춘 것도 처음이고, 저와는 다르게 활동하는 친구들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그걸 보면서 배운 게 많았죠. 그 전에는 혼자 운전해서 행사장에 가고, 스케줄을 잡았거든요. 방송을 하는 방법, 카메라 앞에 서는 것, 마이크를 차는 것 등 배운 게 많았어요. 그리고 방송에서 보여준 저의 팔 동작도 하이량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더라고요. 또 제가 무대에 올라가기까지 덜덜 떨어요. 그런데 점차 현장에서 활동했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떠는 것도 없어졌죠. 이제는 댄서들과 당당하게 올라가서 무대를 하게 됐어요.”

2005년 제1회 현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하이량은 이전부터 수많은 가요제를 휩쓴 실력파다. 부모님께서 음악을 하셨기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노래와 무대를 접했다고.

“부모님께서 음악을 하셔서 저는 대기실에서 키워졌어요. 가수 삼촌, 이모들 손에서 키워져서 사람과 현장이 편했죠. 저에겐 피아노가 장난감이고, 무대가 놀이터였어요. 제가 8남매 중 막내인데 늦둥이다 보니까 부모님의 일터에 자연스럽게 나가있었어요. 10살 때였나? 언니 한 분이 조명을 받으면서 노래하는 걸 보고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는 게 당연해서 일상생활이었거든요. 그 모습이 쇼킹하게 다가왔던 거예요. 가수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선 허락하셨는데 아버지께서는 반대를 하셨어요. ‘가요제 나가서 3등 안에 들면 허락해줄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처음 나간 가요제에서 1등을 했어요. 그렇게 아버지도 허락하게 됐죠.”



하이량에게 전부는 ‘노래’와 ‘무대’지만 어린 시절부터 쉼 없이 달려왔기에 지칠 법도 하다. 그런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고,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부모님’이라고 한다.

“아빠와의 약속을 져버리기 싫었어요. 유언을 지키고 싶었죠. 저는 노래 아니고는 생각해본 게 없어요. 무대에 못서면 제가 못살 거예요. 아빠의 마지막 유언이 ‘절대 무대 위에서 아마추어처럼 눈물을 보이지 말고, 포기 하지 마라’였어요. 저의 정신적 버팀목은 아빠였는데 아빠가 없으면 무너질 거라는 걸 아신 것 같아요. ‘엄마도 책임지고, 먹여 살리더라도 노래로 먹여 살려라’고 하셨어요. 결국 포기하지 말고, 무대 밑으로 내려오지 말란 말이셨던 것 같아요.”

하이량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버지와, 나아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신청곡’으로 또 다른 도전에 나선 그의 행보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바다.

“방송으로 많이 찾아뵈려고 해요. 예능 쪽으로도 그동안 보여드리지 못했던 ‘찐 하이량’을 보여드리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저의 훗날 계획은 우리나라의 트로트를 세계 각국에 알리기 위해 버스킹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콘서트를 많이 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관객분들과 아이컨택을 하는 걸 좋아해서 ‘현장형 가수’가 되는 게 꿈이죠. 저 하이량을 그저 센 이미지로만 안 보셨으면 해요. 방송에서 비춰지는 건 의도하지 않는 모습이 나갈 수 있거든요. 보이는 모습으로만 보고,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진실 된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티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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