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관’ 곽경택 감독, 신파 덜어낸 이유 [인터뷰]
- 입력 2024. 11.29. 17:16:21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영화 ‘소방관’이 오는 12월 4일, 드디어 개봉의 빛을 본다. 2020년 크랭크업 후 약 4년 만이다. 우여곡절 끝에 작품을 개봉하게 된 곽경택 감독은 “족쇄를 풀어나간 것 같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소방관' 곽경택 감독 인터뷰
‘소방관’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투입된 소방관들의 상황을 그린 이야기다. 영화는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7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 주택에서 방화로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됐다.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은 당시 서울 서부소방서에 근무 중이던 소방관 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3명이 큰 부상을 입은 대형 참사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가 알려진 바. 곽경택 감독은 왜 이 실화에 주목했을까.
“저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일만 생기면 119를 부르더라고요.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위급상황에 도움을 주려고 계신 국가조직이지만 약주를 많이 하신 분들이 (119를 부르고) 황당한 행동을 할 땐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권력집단도 아니잖아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계신 분들이고, 그분들과 주고받는 게 있다면 부채의식이 덜 있을 텐데 받는 것 밖에 없으니 그래서 부채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곽경택 감독은 생존자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구체적인 사건이 아닌, 소방관들의 용기와 정서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상업영화로써 색깔도 띄어야 했기에 연출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터.
“제작비의 한계도 있었어요. 순예산이 96억인가 그런데 찍을 때만 해도 인건비가 오르고 그랬거든요. 약 20억원을 가지고 화재 장면을 해내야 했어요. 그것에 대한 압박감이 컸죠. 그렇지만 화재로 폭발적인 진한 사건이 있거나 액션물은 아니잖아요. 제가 요구할 수 있는 제작비도 캡이 씌워진 느낌이었어요. 그렇지만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었기에 그것 때문에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소방관’의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현장이었다고. 불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카메라 안팎으로 불을 지피고 끄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촬영된 장면은 실제 화재 현장을 방불케 하는 신으로 탄생됐다.
“크게 두 개로 나눴어요. 하나는 연기와 화염이었죠. 연기로 현장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건 빌라화재 신으로 가고, 화염과 붕괴요소로 위험을 줄 수 있는 건 마지막 상가화재로 가야겠다고 양분 시켜놨죠. 후반부 화재는 많기도 하고, 배우들의 눈빛 교환이 잘 되어야 하기에 그 부분은 연기를 너무 많이 못 넣겠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곤란함을 표현하고 싶어 앞쪽에 많이 넣었어요.”
언제 어디서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제작진과 배우들은 언제나 긴장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특히 본격 촬영에 앞서 출연진은 몇 주간 소방 교육을 수료하기도 했다고.
“저뿐만 아니라 현장 스태프들을 계속 긴장하게 만드는 게 임무였어요. 현장에서 특수효과 팀장으로 안 된다, 대표가 와라고 해서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죠. 현장에는 항상 소방대원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은 안전과 고증의 문제로 모시고 촬영했죠.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위험요소는 최대한 없애면서 했어요. 세트들도 화재가 날 수 있잖아요. 불이라는 게 녹이고, 태우고, 허무니까. 세트 디자인도 철재를 다 박아서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 조치를 했어요. 계속 긴장하며 촬영했죠.”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친구’부터 1978년 부산에서 실제 일어난 유괴 사건을 다룬 ‘극비수사’,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인물들을 다룬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 이어 이번 ‘소방관’까지. 곽경택 감독은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진정성을 전한 바. 곽 감독에게 실화가 가진 이야기의 힘은 무엇일까.
“실화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굉장히 고민스러운 지점이 있어요. 제가 그 시나리오에서 못 벗어나는 거죠. 스스로 머릿속에 실화의 캡을 씌워놓으면 못 빠져나가더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거리두기를 해야 해요. 다시 또 들어가서 붙여야 하고, 반복적인 각색 작업이 굉장히 많이 요구돼요. 장점은 실화의 밑바탕 구조가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어떤 집을 지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죠. 저희 아버지가 옛날에 뜬금없이 저에게 ‘야, 너 재밌는 영화가 뭔지 아니?’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감독인데 말이죠. 하하. 그래서 ‘재밌는 영화는 글도 좋아야하고, 완성도가 중요하다’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내가 안 봤을 때 보고 온 사람이 재밌게 얘기하는 영화’라고 하셨어요. 그 말은 즉,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는 것. 결국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어요.”
실화가 바탕이지만 ‘소방관’은 관객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눈물을 짜내기 위한 신파는 철저히 배제하면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감정 과잉 장면을 최소화 하면서 결말 또한 담백하게 끝맺음 시키는 곽경택 감독의 연출 의도가 돋보인다.
“펑펑 울고 나오면 카타르시스가 있긴 해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건 계속 여운이 남는 거죠. 저희 아버지가 코로나19 때 돌아가셨어요. 그때 울지 않았는데 계속 슬픔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확 감정을 쏟고 나면 그렇지 않을 텐데 안 쏟고 담아내면 더 여운이 오래간다고 생각하죠.”
곽경택 감독의 시선에는 매운맛의 사건보다 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의 진정성이 주로 자리해 왔다. ‘소방관’ 역시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서사를 부여한다. 그러나 주된 서사를 차지하는 건 진섭 역의 곽도원이다. 곽도원은 2022년 음주운전 적발로 물의를 빚고 활동을 중단한 상태. 주연배우의 책임감 없는 행동에 ‘소방관’은 ‘곽도원 리스크’를 안고 가야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음주운전과 관련해 국민들이 무섭게 지적하시는 이유는 자기 혼자 잘못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것에 대한 실수는 가혹하게 질타하는 것 같아요. 그 배우 한 사람의 어떤 부주의함과 그 운전으로 피해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스타가 되기 어렵지만 스타가 되고 나면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하죠. 개인의 익명성은 포기해야 해요.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면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해야 하죠. 저도 캐스팅을 하거나, 현장관리를 할 때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굉장히 잘하는 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마동석 같은 팀이 레퍼런스를 세게 한다고 해요. 그런 팀을 보고 배우려 하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이포엠 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