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일즈맨의 죽음', 여전히 잔혹한 자본주의의 현실 [무대 SHOUT]
- 입력 2025. 02.03. 14:08:44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연극 시장의 대표적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작품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일즈맨의 죽음'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평범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 대공황이라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직업과 가족을 잃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그 안에서의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세밀히 조명해 삶과 가족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윌리 로먼은 30년 넘게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성공한 세일즈맨이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영업 사원, 존경받는 가장이었던 그 역시도 대공황을 기점으로 일과 가정생활 모두 순탄치 않아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다. 직장에서 입지가 좁아지면서 적은 돈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고, 서른이 넘어도 무능한 두 아들을 데리고 있지만 윌리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극은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윌리의 정신착란 증세를 이용해 시점을 오가며 전개된다. 초반에는 혼자만의 꿈에 갇혀 사는 윌리의 모습이 피로감을 준다.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그가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던 이유, 가족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던 이유 등이 드러나면서 과거로 도피한 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또한 작품 속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꿈과 현실의 충돌이 결코 먼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윌리는 1930년대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급변하는 자본 시장 속에서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되고, 젊은 시절 집을 구입하느라 쓴 대출금을 갚기 위해 평생을 일한다. 이로부터 약 10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평생 돈을 모아도 집 하나를 구입하는 일은 쉽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선 노동을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은 자본주의라는 공통분모로 현재와도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박근형의 열연이었다. 박근형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긴 러닝타임 동안 윌리 캐릭터 그 자체로 분해 극을 이끌어 나간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잘 표현해 어느새 짜증보다는 연민 섞인 눈빛으로 윌리를 바라보게 된다.
윌리의 아내 린다 로먼 역의 손숙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몰입감을 더한다. 또한 아들 비프 로먼 역의 박은석과 해피 로먼 역의 고상호 역시 복잡한 감정 표현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로먼 부자의 갈등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이번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윌리 로먼 역에 박근형과 손병호, 린다 로먼 역에 손숙과 예수정, 비프 로먼 역에 이상윤과 박은석, 해피 로먼 역에는 김보현과 고상호가 합류했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두 모인 만큼 몰아치는 열연의 향연이 총 190분(인터미션 포함)동안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몇몇 대사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교적 큰 극장에서 이뤄지는 연극 무대로 배우들이 무선 마이크를 착용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인해 일부 대사를 놓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는 3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