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이 묻는 아름다움의 진실[씨네리뷰]
- 입력 2025. 09.12. 12:05:28
-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보고 난 뒤의 여운은 길다. 영화 '얼굴'은 1970년대 급속 성장기의 그림자를 비추며 아름다움에 대한 통념을 집요하게 묻는다.
'얼굴'
'얼굴'은 앞을 못 보지만 전각 분야의 장인으로 거듭난 '임영규'와 살아가던 아들 '임동환'이 40년간 묻혀 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정 사진도 없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동환에게 정영희의 자매와 그들의 자식들이 찾아온다. 동환은 어머니에 대해 묻지만 이들에게 하나같이 "영희는 얼굴이 못생겼어"라고만 말한다. 동환은 영희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고, 김 PD와 함께 과거의 인물들을 한 명씩 인터뷰하며 진실을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총 다섯 번의 인터뷰와 클로징 멘트로 구성돼있다. 동환은 정영희가 근무했던 청계천 의류 공장 '청풍피복'과 관련된 주변 인물을 시작으로 점점 진실에 더 가까운 인물을 만난다. 사람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과거 회상이 진행되면서 관객들은 정영희에 대한 미스터리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얼굴'은 영규와 영희를 통해 1970년대 한국의 고속 성장을 이룬 근대사를 풍자한다.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야 했던 시각장애인 영규, 각종 폭력에 노출된 노동자 계층 여성 영희를 설정해 밝은 미래 뒤의 이면을 그려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동환과 김 PD가 만나는 인물들도 1970년대의 시대성을 함축하고 있다. "못생겼다", "똥걸레"라는 말을 꺼내는 데에도 서슴없는 직원들, 직원들에게는 '천사'로 불리지만 뒤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백주상 사장 등은 성장주의 시대 속에서의 혐오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니버스' 특유의 문제의식과 비판 의식은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시각장애인인 영규가 시각미술인 전각에 뛰어난다는 점, "못생겼다"는 사람들의 증언은 계속되지만 영희의 얼굴이 영화 내내 보이지 않는 점 등은 외면과 내면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영규는 앞을 못 보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글씨가 참 예뻐요"라며 영희가 처음 말을 걸어줬던 때 마음이 열리는 모습에서도 영규가 외적인 미(美)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작품에서 영희의 내면 속 선함과 정의로움을 보여주지만 결국 작품 속 인물들과 관객들은 드러나지 않는 그의 '얼굴'을 가장 궁금해 한다. 연 감독은 두 인물의 역설적인 설정과 연출을 통해 미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얼굴'은 2억 원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스태프 20명, 촬영 기간 3주라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이 정도의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점이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아들 동환으로 분한 박정민이 젊은 영규로 처음 등장할 때의 미묘한 차이는 '역시 박정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권해효 역시 그의 연기 내공으로 임영규가 지나온 세월을 생생하게 표현해냈고, 러닝타임 내내 얼굴을 보이지 않는 신현빈 역시 손이나 어깨, 목소리 등을 통해 캐릭터를 세밀하게 잘 그려냈다.
'얼굴'은 지난 11일 개봉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은 103분.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