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영, 친일의 정도, 위안부의 순결 강박증
- 입력 2026. 08.14. 11:13:01
- [유진모 칼럼] 공교롭게도 8·15 광복절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연예 뉴스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 하영이 방송을 통해 자신의 가문을 자랑한 뒤 누리꾼에 의해 친일 의혹이 제기되었고 하영의 소속사는 부인했지만 결국 소속사는 물론 하영까지 고개를 조아리며 친일을 인정하고 있다.
하영
그런데 꼭 그런 분위기만은 아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분류되는 강제 합방에 내부 친일파의 도움이 음으로, 양으로 보탬이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있듯, 아직까지 일제 강점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적지 않은 친일파 의심 잔존 세력이 남아 있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박유하 세종대 명예 교수가 하영을 옹호하고 나섰다. 박 교수는 이번 논란을 ‘친일 강박증’과 ‘순결 강박’의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친일 강박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안상호가 얻은 명예와 부를 단순히 친일 행적의 결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펼쳤다.
그는 더 나아가 일제 강점기 때 사회 지도층 상당수가 식민지라는 구조적 현실 속에서 친일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친일파를 옹호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던 인물들의 행적을 개인의 선택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친일적 감정을 지닌 사람들 중 일부를 제외하면 받아들여지기 힘든 증거는 널려 있다. 왜냐하면 그의 역사 인식이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3년 출간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존의 피해자 중심 서술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그는 위안부를 ‘매춘의 틀’과 연결하고 일본군과의 관계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함으로써 거센 비판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그 내용이 자신들의 경험과 존엄을 훼손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역사학자 심용환도 나섰다. 그는 안상호가 친일 단체로 분류되는 대정친목회에 이름을 올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으로 그를 친일파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상호의 행적에 대해 “근대 의료 보급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해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친일파라는 역사적 규정에는 별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49년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거론하며 당시 법이 친일 행위자 가운데서도 ‘수뇌’, ‘지도적 행동’, ‘악질적인 행위’ 등을 구분해 판단했다는 점을 강조한 가운데 적극적인 부일 협력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영은 방송을 통해 자신이 ‘금수저’이며 자신의 집안이 대대로 의사를 배출한 가운데 매우 풍요롭다고 과시했지만 그 가벼움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엄청난 역풍을 맞으면서 배우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증조부의 친일 행위를 모르고 그랬다고 하더라고 소재원 작가의 지적대로 나잇값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신의 증조부의 친일 탓에 집안이 부끄럽다고 자조한 온라인상의 글의 주인공이 하영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게 맞는다는 전제하에 그녀는 증조부의 친일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감추고 의사 집안만 강조하며 자신의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포장하려 의도했다고 보자.
그렇다면 친일 내용을 알고 있었고, 그게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소속사를 통해 부인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이 호박 넝쿨처럼 줄줄이 드러나자 한참이 지나서야 백기 투항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를 진심으로 보아야 할까, 무장 해제된 이후의 어쩔 수 없는 항복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박유하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매춘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매춘부에 대한 전 국민적 정서를 순결 강박증으로 폄훼, 왜곡했다. 아무리 섹스를 좋아하는 여성일지라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의 상황상 전쟁터에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좋아할 이는 있을 수 없다.
물론 위안부에게 일본 제국주의가 의식주를 제공하고 약간의 금품도 주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짐승만도 못한 생활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 여자가 있을까? 이에 대해 여자인 박유하에게 묻고 싶다. 매매춘을 정당하다고 보는가? 만약 위력으로 여자를 매춘부로 만든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인가? 육체적 순결이라는 정서가 현대 사회와 맞는가? 더구나 매춘, 더 나아가 위안부와 순결을 동일선상에서 재단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모든 여성의 정서에 부합하는가?
심용환은 안상호를 친일파로 확정하지 못할 이유로 그의 친일의 ‘정도’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안상호는 식민지 지배에 순응했고 적당히 일제와 결탁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명하게 적시했다. 반민족행위처벌법과 친일파는 그 내용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심용환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100% 공평하게,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납득할 만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모든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가? 법도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와 국회의원이 있는 것이다. 법과 친일 행위는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심용환은 분명히 안상호가 적당히 일제와 결탁해 영화를 누렸다고 인정했다.
그건 자랑할 게 아니다. 반민족처벌법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걸 자랑하는 하영에 대한 비난이 합당한, 가장 확실한 이유이다. 만약 박유하의 논리가 합리적이라면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자신의 목숨을 던진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나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보탠 보이지 않는 독립운동가는 우둔한 사람이다. 가족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다.
적당히 일제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안위를 보전했다면 가족과 가정을 지켰을 텐데 집안을 풍비박산 나게 만든 가정 파괴범이다. 또한 두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세계 지도는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지배하에 있어야 마땅하다. 한때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수많은 나라들의 자주성은 다 우매한 행동이 되어 버린다.
[유진모 칼럼/ 사진=셀럽미디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