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읽기] ‘바벨’이 들어올린 ‘19금 마케팅’의 가벼움
입력 2019. 02.01. 12:56:55

TV조선 ‘바벨’

[더셀럽 한숙인 기자] 부정적이기만 했던 ‘19금’이 드라마의 차별화 요소가 되면서 ‘19금 마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19금’ 등급이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오히려 무분별한 선전성과 폭력성의 자정작용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19금 드라마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제아무리 등급을 매겨도 시청자들을 차단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뿐 아니라 ‘19금’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유인요소가 되면서 이유 없는 ‘19금 남발’이 우려되는 가운데 ‘바벨’이 논란의 포문을 열었다.

TV조선 토일 드라마 ‘바벨’은 이전 드라마의 부분적 19금이 아닌 ‘19금 격정멜로’를 표방해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지만 막상 첫 회가 나간 이후 드라마의 지향점과 차별점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

‘바벨’은 지난 17일 방영된 1회에서 야망과 복수의 전형을 따르는 기업 드라마의 차가운 톤으로 일관했다. 19금을 넘어 29금을 방불케 하는 수위에도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순도 100% 기업 드라마를 보여줌으로써 ‘왜’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2월 방영된 JTBC ‘미스티’는 국내 최고 앵커의 치정이 갈등의 축을 이루는 드라마로, 초반 3회를 19금으로 내걸었으나 표현 수위는 29금을 방불케 했다. 19금 공지가 붙지 않은 회 차에서도 치정에 얽힌 사건이 연결돼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을 유지했다.

국내 최고 앵커 고혜란(김남주)을 중심으로 그녀의 남편 강태욱(지진희), 그녀의 과거 연인 이재영(고준), 이재영과 불륜을 맺는 한지원(진기주), 네 사람의 심리 변화는 자극적 치정으로 그칠 수 있었던 드라마를 웰메이드로 끌어올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드라마에서 ‘19금’ 등급은 생각지도 못했던 2013년에 방영된 SBS ‘야왕’은 케이블TV도 종편도 아닌 지상파였음에도 선정성과 폭력성 측면에서 파격적인 수위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2회에서 권상우의 상반신 노출신은 지금까지도 역대 급 장면으로 꼽힐 정도로 논란과 호응을 동시에 끌어냈다.

술집 호스트로 술자리에서 상반신을 벗고 근육을 과시하는 장면으로 인해 당시 ‘권상우 등근육’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MBC '나쁜형사‘는 음울한 분위기와 적나라한 살인 묘사로 하드코어 영화를 방불케 했다. 지상파에서는 이례적인 ’19금‘ 폭력 수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적절한 편집으로 논란은 피하고 화제성은 건졌다.

이처럼 드라마의 19금 역사는 짧지 않다. 19금’을 내건 드라마들은 설득력 있고 치밀한 갈등 구조를 제시해 논란과 호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호응에 무게를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작들의 부분적 19금이 아닌 ‘19금 격정 멜로’를 내건 바벨은 타임머신을 타고 20년쯤은 거슬러 올라가 근대사를 다룬 기업 드라마를 보는 듯 기업의 성공과 그 과정에서 파생된 희생자들의 복수라는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최소한의 긴장감마저 틀어쥐지 못했다.

‘바벨’은 19금 장면의 유무를 논하기 이전에 첫 회에서부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짐작케 하는 뻔한 갈등 구도를 어떻게 풀어 갈지가 더 큰 과제다.

‘바벨’은 첫 회에서 거산그룹 후계자 태민호(김지훈)의 죽음으로 시작해 최근 잘 나가는 드라마의 필요충분요건인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축을 이를 것임을 알렸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의 선이 뚜렷하지 않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듯 치명적 매력을 보여줘야 할 태민호의 아내 한정원(장희진)은 과거 톱스타 이력의 그냥 무기력한 여자로, 극의 긴장감을 틀어쥐고 있어야 할 차가운 이성을 가진 태유라(장신영)는 차우혁(박시후)의 애정을 갈구하는 수동적 여자로 그려졌다.

반면 박시후가 맡은 차우혁에게 무게중심을 실었으나 그의 치명적인 능력과 매력을 설명하는 장치조차 강렬하게 그리지 못했다. 기자에서 검사가 돼 거산그룹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복수에 나서는 차우혁이 태민호와 과거 악연으로 얽혀있음이 암시되고 우는 한정원에게 키스를 하면서 1회가 끝나 세 사람이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갈등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아 태 회장의 죽음과 태민호의 실종 소식에 통쾌하게 웃는 신현숙(김혜숙)의 웃음만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19금이라고 해서 자극적인 장면을 대놓고 보여줄 필요는 없다. 전개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폭력성과 선정성, 이런 연상을 타당하게 하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쁜형사’는 이 같은 분위기 연출만으로 시청들이 ‘19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하게 했다. 그러나 ‘바벨’은 긴장을 바짝 틀어쥐어야 할 1회에서 ‘19금’이 아닌 ‘19금 마케팅’의 허망함만을 남겼다.

“1분1초도 눈을 땔 수 없이 휘몰아치는 전개 속에서 범인을 예측할 수 없는 밀도 높은 미스터리를 선사한다”라는 제작진의 공헌이 허튼소리가 아니기 만을 바랄뿐이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TV조선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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