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유스컬처 ; 트렌드 키워드] 청춘을 움직이는 ‘마이리티 리포트’
- 입력 2017. 04.24. 15:20:52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패션은 오랜 시간 하이엔드(High-End)의 지루한 가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비릿하지만 생동감이 느껴지는 하위문화를 동경해왔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하위문화의 역동성은 늘 ‘새로움’의 갈증에 목말라 하는 주류문화에서는 마치 마약처럼 쉽게 끊어내기 어려운 마력으로 소비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20일 트렌드 정보 그룹 PFIN은 ‘2018 유스컬처 트렌드’ 세미나에서 유스들이 주도한 마켓 이슈 12개 키워드와 함께 패션계가 주목해야 할 트렌드 키워드 4개를 제시했다.
#1. 평범함을 로망하는 YOUTH, I.R.L. In. Real. Life
현실은 늘 그렇듯 대중이 비난하는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비논리가 판을 치고, 나홍진 감독의 영화보다 더 극악한 무도한 사건들이 판을 친다. 그 속에 아직 채 영글지도 못한 청년들은 ‘청춘’이라는 이유로 무한 인내를 강요받고 있다.
MBC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아버지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라는 은호원(고아성)의 한탄은 청춘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 ‘평범’이라는 개념까지 뭉개버리는 현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이처럼 극악무도한 현실에서 청춘들이 공감하고 위로받는 대상은 역시나 비주류들이다.
지난 2016년 8월 이후 음원차트를 장기집권하고 있는 ‘볼빨간 사춘기’는 Mnet ‘슈퍼스타K’를 3년 연속 탈락한 남다른 이력에서 이미 청춘들의 동질감을 끌어내는데 성공하며 유스세대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같지만 다른 것’이 유스세대들의 문화 소비 기준으로, ‘가성비’를 중시하지만 ‘희귀템’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의도적으로 리미티드 아이템으로 기획하지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소량만을 한정 판매하는 블로그 마켓 붐이 일고, ‘데일리룩’ ‘OOTD’ 같은 키워드가 인기를 끄는 것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유스 세대들은 “자연스럽고 평범해야 진짜 ‘LIT’”이라고 할 정도로 평범한 자신들을 평범한 채로 내세워 차별화한다.
한편 팔로워가 1만 명을 넘지 않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게 열광하고 접근 가능한 감각적 문화생활을 향유하면서 다중이 소비하는 획일화 된 보편타당함은 거부하는 이중성으로 자신들을 개별화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 속에 ‘앤더슨벨’ ‘87mm’ 등 ‘유니크 베이식’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급부상했다.
‘평범하지 않은 베이식’이라는 논리적 오류를 안고 있는 ‘유니크 베이식’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을 법하지만 그냥 쓰윽 지나칠 수 없는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스세대에 최적화된 패션으로 급부상했다.
#2. 상식을 깨는 YOUTH, NonSensor
기성세대들은 프렌즈를 사기 위해 몇 미터나 되는 줄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유스들에게 이해불가의 시선을 보낸다. 그런가 하면 셔츠의 앞뒤를 돌려 입거나 스웨트셔츠의 겉과 안의 뒤바뀐 옷의 기괴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깨는 시도에 열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을 통해 유스세대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한다.
일명 ‘8초 세대’로 불리며 재미있기만 하면 그게 뭐든 상관없다는 그들은 ‘말도 안 되고, 보편타당하고, 자기비하도 서슴지 않으면서’ 오직 ‘재미’를 추구한다. 이는 유니크 즉 독특함에 대한 강한 열망에서 발현된 것으로, 울트라 퍼스널라이즈드(Ultra Personalized)를 추구하는 울트라 퍼니(Ultra Funny) 협업이 끊임없이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위 ‘상식적’이지 않을수록 유스세대에게는 가장 ‘릿(LIT)’(awsome, cool 등을 의미하는 슬랭어)한 것으로 환영받는다.
지난해 가장 인기를 끈 tvN ‘도깨비’에서 반전 있는 패션으로 공유만큼이나 인기를 끈 저승사자 이동욱은 등판에 운동화처럼 묶는 끈 디테일이 더해진 블랙 스웨트셔츠를 완판시키며 디자이너 김동준의 ‘디그낙’을 유스컬쳐의 아이콘 자리에 세웠다.
베트멍은 이처럼 유스세대들이 열광하는 상식적이지 않는 패션 흐름을 주도했다. 3X Large는 기본이고 앞판을 뒤로 보낸 트렌치코트, 소매를 절단해 몸판과 분리한 셔츠 등 베트멍의 실험적 시도들은 해체패션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를 들먹이는 것이 오히려 멋쩍을 정도로 유스세대 대표 패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3. 메이저에 저항하는 YOUTH, MinorLITY
히피들은 전쟁에 반대하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더는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비트 세대는 전후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부유하면서 그게 퇴폐 든 광기 든 문학을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2017년 유스세대들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시작이 ‘마이너리티(minority)’다.
유스컬처는 ‘저항 정신’이 근간을 이룬다. ‘2017 FW 뉴욕패션위크’ 런웨이와 리얼웨이를 장식한 반트럼프 캠페인 ‘Tied Together’는 유스세대들의 반항이 유아적 미성숙이 아님을 보여준다. 베이식 티셔츠에도 강렬한 자기 주장이 담긴 문구가 새겨져야 불티나게 팔리는 등 ’그들의 의식 표현이 곧 트렌드‘로 패션계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의식이 있으神’ 소수의 젊은 액티비스트 혹은 크레에이터들이 유스세대들의 지지를 받고, 서비스 혹은 소비재에서도 이러한 의식이 담겨야 유스세대의 소비를 끌어낼 수 있다.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을 겨냥한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의미를 담은 에어앤비의 어셉티드 캠페인, 페미니스들을 겨냥한 로레알의 소수 집단 옹호 마케팅 툴 등은 기업이 유스세대들의 적이 아닌 동지로 다시 설 수 있게 했다.
슈프림은 유스세대들의 이러한 ‘의식’의 심연을 파고들어 수많은 마니아와 폐인을 양산했다.
슈프림을 창업한 제임스 제비아는 스케이트보더 출신으로 본인이 유스컬처의 중심에 있는 유스세대다. 슈프림은 ‘드롭 시스템’으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고 극히 제한적 수량만을 생산해 유스세대의 ‘다름의 욕구’를 충족한다. 이 같은 전략이 유스세대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슈프림의 큐레이팅 능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패션계의 평이다.
베트멍과 함께 유스세대의 상징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슈프림은 반항적인 스케이트보드의 문화적 정체성, 일관된 보편성, 예상치 못한 하위문화 디깅,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구든 슈프림 협업으로 누군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100% 거짓말이다”라고 할 정도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상품화 하는 역량의 탁월성에는 이견이 달 수 없다는 것이 패션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4. 복고에 심취한 YOUTH, Nostalgique
복고는 더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패션은 ‘재생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에서 영감을 받아 현재에 부족한 스토리를 메워나간다.
그러나 최근의 복고는 히스토리 부재의 현실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이전과 달리 팍팍한 현실에서 일탈하기 위한 탈출구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재해석으로 복고의 원형을 흐트러뜨렸던 반면, 최근에는 원형에 충실한 복고에 열광한다.
이는 원형이 보존된 복고가 특유의 진한 향수를 자극하며 인간성 부재의 현실에서 조금이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출생과 함께 모바일을 접하고 산 유스세대들은 가짜뉴스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24시간 쉬지 않고 업그레이드되는 정보 홍수로 인해 일상 탈출 욕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져 노스탤지어 즉 향수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됐다.
이에 슬로우 테크, 레코드 이런 아날로그 문화가 중장년층이 아닌 유스세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일종의 판타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젊은 세 명의 디자이너는 세련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을지로에 호텔 수선화를 오픈하며 아티스트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넷플리스의 ‘기묘한 이야기’는 향수를 자극하는 스토리 전개로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유스세대들은 외환위기 직전 풍유의 시대였던 90년대를 지배한 패션 및 문화 코드에 열광하며 커다란 로고 티셔츠 같은 촌티 나는 원형 그대로의 아이템을 현 시대의 베이식과 믹스매치해 자신들만의 ‘릿’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평범함을 비범하게 살려내는 유스세대들의 ‘끼’가 만들어낸 유스컬쳐는 주류문화의 허세를 뒤엎는 하위문화의 혁명으로 탄핵과 선거로 이어지는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도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불씨이기도 하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MBC ‘자체발광 오피스’, tvN ‘도깨비’, 볼빨간 사춘기 페이스북, 앤더슨벨, 87mm, 대림미술관 홈페이지, 슈프림 페이스북, 베트멍, 타미힐피거 인스타그램, 르까프, 휠라 홈페이지, 엠마왓슨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