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면서 보세요”…박찬욱 감독 ‘동조자’, 또 다른 역작 탄생 [종합]
입력 2024. 04.18. 18:06:42

'동조자' 박찬욱 감독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박찬욱 감독이 돌아왔다.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자, TV 시리즈로는 ‘리틀 드러머 걸’ 이후 6년 만이다. 프랑스‧미국‧일본 등이 베트남에 미친 영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음미하면서 보면 더 재밌을 것”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블랙 코미디 요소가 묻어있는 ‘동조자’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는 쿠팡플레이 독점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동조자’ 언론시사회가 개최됐다. 이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는 박찬욱 감독 등이 참석했다.

비엣 탄 응우옌 교수가 쓴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한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7부작 시리즈다.

박찬욱 감독은 캐릭터 설정에 대해 “시리즈로 만들면서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은 많은 인물을 다룰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각색할 때 하나하나 정리하지 않고, 매력과 개성을 표현하려고 했다”면서 “주인공을 빼고 제일 애착을 가진 캐릭터는 장군이다. 이 사람은 ‘왕관을 쓴 광대’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같은 면이 있는데 사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면 잔인하고, 무섭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군은 대위에게 아버지 같이 자애로운 면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서양인으로서 아버지는 클로드다. 이 사람도 무서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하나의 개인, 사생활에 있어선 또 다른 아버지 같다. 미국의 재밌는, 풍부한 대중문화를 소개해주기도 한다”면서 “대위의 자아를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점점 더 분열 시키고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 대위 역에는 호아 쉬안데가 맡았다. 특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인 4역을 맡아 화제를 모은 바.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의 각색을 논의하던 초창기, 3화에 등장하는 스테이크 하우스 장면이 있다. 소설에서 그 장면을 어떻게 각색할 것이냐 논의하다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백인 남성들, 자기 자리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결국은 미국을 뜻하는 시스템, 자본주의, 기관을 보여주는 4개의 얼굴이자 결국 하나의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고, 시청자가 단박에 알게 하고 싶었다. 각본을 어떻게 쓸 것인가 논의했다. 교묘하게 대사를 쓰는 것보다는 한 명의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자는 이야기로 갔다. 이 이야기를 하면 프로듀서들이 미친 사람 취급할까봐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좋은 반응을 보여줬다. 오히려 이 방법이 HBO를 설득할 때 좋게 작용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캐스팅 과정에 대해 “백인의 중년 남성 배우가 누가 있을까 싶었다. 이 역을 다 합치면 등장 시간이 조연이 아니다. 하나하나 씩 보면 조연이지만 스크린타임으로 합쳐놓으면 주연이 다름없다. 희한하게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훌륭한 배우가 많아도 다양한 역할을 구별되게 개성 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쉽게 찾기 어려운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로버트는 TV시리즈를 한 적 없는 슈퍼스타지 않나. 큰 기대 없이 일단 보내 보자 했는데 금방 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와서 신나게 시작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동조자’는 베트남 전쟁 직후인 1975년을 배경으로 미국 LA로 이주한 베트남 난민과 그 환경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 베트남인과 베트남계 미국인이 다수 출연하기에 캐스팅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박찬욱 감독은 “베트남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했는데 그게 어려워서 외국 교포들 2, 3세들을 캐스팅했다. 캐스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배우들은 물론, 배우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캐스팅했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거쳤다. 결국 캐스팅 된 사람들 중에는 배우가 아닌 사람도 많다. 오디션은 짧게 보는 건데 긴 여정을 잘 연기해야하는 것이니 예리하게 판단하고, 믿고 가야하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후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자, BBC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글로벌 시리즈다. 박 감독은 공동 쇼러너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 각본,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원작을 각색하며 주안점을 둔 부분으로 박찬욱 감독은 “소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적어놓기 마련이지 않나. 행동과 대사로 이루어지는 영화 각본과 다르다. 그렇게 풍부해질 수 있는 것을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이 작품은 대위가 어딘가에 갇혀 진술서, 자술서를 쓴다는 기본 세팅이 되어 있었다.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한 사람이 써놓은 것을 읽고, 불러다 대위에게 질문을 하고, 심문하는 시간이 있다는 두 가지 장치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일 먼저 내러티브 장치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저는 진술서를 읽게 하는 형식이라는 걸 관객에게 가끔씩 일깨워준다. 한참 잘 진행되다가 갑자기 엉뚱한 사람의 목소리가 개입한다. ‘잠깐만, 멈춰봐’라고 하며 화면이 멈춘다. 멈추게 한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면서 ‘왜 이렇게 하지?’ 질문을 한다. 그러면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 특정 지점으로 다시 플레이 되는데 조금 전에 봤던 것과 다른 정보가 진행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코미디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다. 문학적 표현, 흥미로운 비유에 그것 이상의 인물 얼굴, 환경 등 영상매체의 특권을 동원했다. 이 상황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유머를 만들려고 했다. 그냥 웃기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 논리적이지도 않고 불쌍하기도 한, 비극적이기도 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씁쓸한 유머가 있지 않나.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설과 다르고, 노력해서 배가시킨 부분이 있다면 코미디”라고 짚었다.



‘연출자로서 고민한 지점’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자격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어떤 소재를 취하는데 있어 꼭 그 집단에 속해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독일 감독이 와서 한국 역사를 다룬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하면 비웃을 생각이 없다. ‘독일인이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떨까, 우리가 보는 관점과 다를 텐데’라며 궁금할 것 같다”면서 “소재가 되는 지역, 사건, 역사를 얼마나 진지하게 공부하느냐. 저에게는 주어진 원작이 있으니까 작가의 의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입장을 넣어 제가 할 수 있는 존중을 담고, 나름 영화적인 표현을 구사해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박찬욱 감독은 ‘동조자’를 제작하면서 ‘아이러니’ ‘패러독스’ ‘부조리’를 기준으로 세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고 한다. 무거운 작품인 동시에 씁쓸하고 날카로운 유머가 녹아있다. 박 감독은 “배우들에게 강조한 건 ‘아이러니, 패러독스’였다. 이 점을 명심하라고 늘 이야기했다. 이것은 단순한, 겉으로 보이는 게 다인 드라마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한다고 얘기했다”면서 “부조리성을 제일 중시했다”라고 언급했다.

최근 글로벌 OTT에서는 아시아에서 출발한 아시아 역사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삼체’ ‘파친코’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영향이 있는가 하면, 시대가 작품의 성공을 만든 것일 수 있다. ‘삼체’의 경우, 거대한 자본이 투자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영향이 필수적이다”라며 “미국사회, 서양사회는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사회지 않나. 특정 일부의 집단, 목소리만 대중문화에서 들려왔다는 반성이 분명히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집단이 점점 힘을 가지게 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통로를 찾고 있고,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경제논리에서 보아도 이것은 하나의 시작이 된 것인데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라고 소신을 전했다.

특히 “‘PC한 것에 대해 피곤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예술 창작에선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이런 기획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구나 느꼈다”면서 “‘동조자’를 제작할 때 베트남 문화, 언어를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 대충해서는 안 된다, 대충해서는 욕먹는다는 걸 HBO와 저 역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거기에 쓰는 돈은 아끼려하지 않더라. 1억 몇언만 원 달러 쇼에 처음 보는 베트남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대사 절반이 베트남어로 나와 자막으로 읽어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는 건 어찌 보면 놀랍고, 어떻게 보면 너무 늦은 일이 아니었나”라고 덧붙였다.



총 7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1~3화를, 5~7화는 마크 먼든 감독이 맡았다. 에피소드 4화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연출했다. 박찬욱 감독은 “다하고 싶었지만 7개는 무리더라. 체력이나 일의 진행 상황으로 봐선 각본을 미리 써놓는다고 해도 많은 관계자들의 지적, 요구, 변수가 등장하기에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초기분량을 찍는 동안에도 뒷 분량은 써야하는 상황이라 모든 걸 다할 수 없었다. 결국 다른 감독을 기용할 것이냐 또한 쇼러너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각본은 제가 쓰니까 일관성은 담보되는 일이었다”면서 “감독들을 만나 연출 스타일에 대해선 이런 분위기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4번째 에피소드는 독립된 내용이다. 분위기가 달라서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 하길 원했기에 페르난도 감독을 모셨다. 지금 업계에서 저와 그보다 더 반대되는 스타일을 가진 감독은 없을 거다. 7개 중 지루해질 수 있는 4화에 맡게 돼 다행이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은 “요즘 시청자들은 한꺼번에 보는 걸 좋아하지 않나. 한 주에 하나씩 기다렸다가 보는 재미도 꽤 있다. 어렸을 때 저를 생각하며 ‘동조자’를 만들었다. TV 시리즈를 만들 땐 항상 어릴 때를 생각한다.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보면 항상 절정에서 끊어버리지 않나. 싸구려 트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걸 좋아한다”면서 “남의 나라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머가 많은 작품이다. 여기서 웃어도 되나 싶겠지만 웃어도 된다. 웃으라고 만든 작품이다. 대폭소가 터지는 유머는 아니지만 음미해가면서 보시면 더 재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첫 공개된 ‘동조자’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쿠팡플레이에서 1회씩 공개된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쿠팡플레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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