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연 문, 실력으로 증명해야 할 무대…K팝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Ce:포커스]
입력 2026. 11.08. 06:00:00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팬덤을 등에 업은 K팝 아이돌들이 잇따라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다. 팬덤과 인지도를 앞세운 이들의 무대 진출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흥행을 넘어 배우로서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나오고 있다.

최근 뮤지컬 캐스팅 명단에는 익숙한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제임스 바이런 딘: 디 오리지널'은 주요 출연진 5명 중 3명이 아이돌 출신 배우로 구성됐으며, '로미오와 줄리엣'은 삼연에 이어 12월 앵콜 공연에서도 가수 출신 배우들이 주인공 로미오 역을 맡는다. 삼연에서는 유회승, 김희재, 뉴, 우빈이, 앵콜 공연에서는 남우현, 하성운, 김희재, 라키, 이경윤이 각각 로미오로 관객을 만난다.

또한 프로미스나인 박지원은 '헬스키친'의 주인공 앨리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으며, 소녀시대 티파니 영은 최근 오른 '유미의 세포들'에 이어 또 한번 '시카고' 출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김준수, 규현, 김성규 등 이미 뮤지컬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주요 배역을 맡는 배우들도 있다.

이처럼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은 일회성 도전을 넘어 하나의 활동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최근 이러한 흐름이 대학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아이돌 가수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증가가 곧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흐름은 뮤지컬 제작사에는 새로운 관객층을 확보할 기회인 동시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캐스팅 기준과 무대 위 역량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흥행 카드이자 새로운 기회…아이돌 캐스팅의 배경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제작사의 현실적인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팬덤을 통한 고정 관객층 확보다. 뮤지컬은 작품을 반복해서 관람하는 이른바 '회전 관객'의 비중이 높은 시장이다.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은 여러 차례 공연장을 찾는 관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사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공연 관계자는 "뮤지컬이라는 분야 자체가 원래도 고정 관객층에 많이 의존하는 구조다. 아이돌은 팬덤의 충성도가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팬들이 이를 계기로 공연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 뮤지컬 시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이들의 입소문이 공연 홍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아이돌에게도 뮤지컬은 새로운 활동 영역을 구축할 기회다. 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이들에게 연기는 자신의 표현력을 확장하고 무대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다. 그룹 활동과 다르게 개인의 역량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전의 의미가 깊다.



◆ 스케줄 조율부터 연기력·에티켓 논란까지…아이돌 캐스팅 뒤에 숨은 우려

그러나 제작사 입장에서 아이돌 캐스팅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룹 활동과 콘서트, 방송 등 여러 일정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연습과 공연 일정을 조율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공연 관계자는 "공연만 진행하는 배우들과 달리 아이돌은 다른 스케줄이 많아 연습이나 공연 일정을 잡는 데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흥행 지표와 배우로서의 역량이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존 뮤지컬 관객들의 시선도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뮤지컬 경험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배우가 처음부터 주요 배역을 맡는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돌 출연작을 관람한 한 관객 A씨는 "뮤지컬 경험이 적은 경우에는 비교적 경계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이돌이라는 이름값으로 주요 배역에 가까운 역할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객 입장에서는 실력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대 이상으로 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대 이하로 실망했던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배경 자체보다 캐스팅 과정에서 배우의 역량이 얼마나 충분히 고려됐는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뿐 아니라 대사와 연기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전달해야 하는 장르다. 안정적인 발성과 가창력을 비롯해 캐릭터에 대한 이해, 장시간 공연을 소화하는 체력과 집중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물론 아이돌 활동을 통해 쌓은 무대 경험과 보컬 역량은 분명 강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해진 곡과 퍼포먼스를 완성도 있게 선보이는 것과 극의 흐름에 따라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따라서 기존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뮤지컬에 필요한 연기력과 표현력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기존 관객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부분은 공연 관람 문화다. 아이돌 팬덤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관객층이 형성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콘서트와 뮤지컬의 관람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 관객 B씨는 "아이돌이 출연하는 회차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관객들의 태도에 놀란 적이 있다"며 "뮤지컬과 연극은 아이돌 콘서트와 관람 에티켓이 다른데, 정숙해야 하는 공연장에서 다소 소란스러운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 '티켓 파워'를 넘어 무대 위 설득력으로 증명해야

이들의 도전이 지속적인 배우 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성장 과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관객 A씨는 "처음부터 주요 배역을 맡기는 것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처음 도전하는 배우에게 어려운 역할을 맡기기보다 조연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것이 배우 본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물론 모든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이미 여러 작품을 거치며 대극장 주연으로 활동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첫 작품에 도전하는 배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돌'이라는 커리어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배역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소화하느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제작사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히 팬덤과 인지도를 활용해 객석을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배역에 적합한 배우를 선발하고 충분한 연습과 준비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아이돌 역시 익숙한 무대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한 연습을 거쳐 뮤지컬 배우에게 요구되는 연기와 보컬 역량을 쌓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이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공연 관계자는 "실제로 한 작품을 계기로 계속해서 뮤지컬에 도전하는 아이돌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팬덤이 열어준 무대가 곧 배우로서의 자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흥행을 위해 선택된 이름이 작품 속 인물로 관객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돌의 뮤지컬 진출이 일시적인 흥행 전략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배우의 탄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무대 위에서 자신의 가능성과 실력으로 이를 증명해 내야 한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셀럽미디어DB, 에스앤코, 글림컴퍼니, 씨일공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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