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아이’, 아버지와 자연주의에 대한 찬가
입력 2022. 06.10. 17:07:15

‘괴물의 아이’

[유진모 칼럼] ‘괴물의 아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으로 유명한 걸작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의 2015년 작품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살던 9살 소년 렌은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함께 살자는 외가의 손길을 뿌리치고 거리로 뛰쳐나가 우연히 괴물 검객 쿠마테츠를 만나 그들의 세계 쥬텐가이로 간다.

1명의 수장이 다스리는 그곳에서 쿠마테츠는 후임 수장을 놓고 이오젠과 경쟁 중이었다. 수장은 쿠마테츠에게 제자를 키워야 수장 도전 자격이 있다고 했지만 그가 워낙 괴팍하고 독선적인 성격이라 그 누구도 선뜻 제자로 입문하지 않던 터. 쿠마테츠는 제자가 되라고 강요하지만 역시 자존감 강한 렌은 고분고분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이어 준 사람은 쿠마테츠의 친구 타타라와 승려 햐쿠슈보. 쿠마테츠는 큐타라는 새 이름을 지어 준다. 큐타는 거리에서 이오젠의 두 아들 이치로히코와 지로마루를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성질 급하고 제멋대로인 쿠마테츠는 이오젠과 결투를 벌이지만 관중의 일방적인 이오젠을 향한 응원 속에서 무참하게 패배한다.

그 모습을 본 큐타는 쿠마테츠 역시 자신처럼 외톨이라는 동병상련을 느끼고 함께 수련을 하게 된다. 쿠마테츠가 수련하는 집에 나타난 수장은 소개장을 주며 다른 세계의 현자들을 만나 강함의 의미를 배우라고 배려한다. 서로 서서히 마음을 연 쿠마테츠와 큐타는 함께 성장해 가고 어느새 큐타는 17살의 고수로 성장한다.

그 소문을 듣고 쿠마테츠의 집에 제자 지망생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큐타는 우연히 인간 세계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나가 여고생 카에데를 알게 된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큐타는 그녀를 통해 고교 과정까지 깨우치고, 그녀로부터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가라는 충고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구청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재회하는데.

호소다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만큼 무협지의 형식으로 펼쳐지며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게 강점이다. 다양한 메타포의 함의 중 가장 두드러지는 건 아버지이다. 렌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강하다. 그 때문에 스스로 외톨이라고 자학하고 있었다. 그가 쿠마테츠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쿠마테츠 역시 아버지도, 스승도 없이 혼자 자랐고, 혼자 무술을 익혔다. 거칠지만 독창적이고, 제멋대로이지만 정이 강하다. 쥬텐가이는 자연을 의미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순수의 세계. 이오젠처럼 정석적인 개체가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한 쿠마테츠 같은 개체도 있기 마련. 그게 자연이고, 질서이자, 자연법이다.

쿠마테츠를 거부하던 렌은 큐타라는 새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한다. 아버지로 인정한 것. 쿠마테츠 역시 고압적 자세에서 벗어나 큐타를 친구 겸 동료로서 인정하고 함께 성장한다. 주인공은 친부와 재회한 뒤 렌과 큐타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위기를 통해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의 뜻을 깨우친다.

또 다른 외톨이 카에데는 “나는 부모의 행복을 위해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과 다툰 적이 없어. 부모는 내 마음을 몰라줄 뿐만 아니라 신경도 안 써.”라고 호소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각각 어떤 존재자여야 하는지의 웅변. 렌은 “스스로 나를 발견해야 진정한 내가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살 거야.”라는 말에 또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지난날은 잊고 함께 살자는 아버지에게 “지난 시간들을 갑자기 메울 수 없다.”라며 손을 뿌리치지만 결국 두 아버지와 모두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그 비결은 인간에게 내재된 ‘어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 어릴 때 그는 “다 싫어.”라며 세상을 비난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인가, 짐승인가?”라고 고뇌했다.

그런데 이치로히코에게서 어릴 적 자신의 가슴에서 보았던 어둠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건 내내 그의 곁에 머무는 어머니의 정령인 치코 덕분. 그게 부모의 도리라는 메타포이다. 자연에도 아이러니는 있다. 완벽한 듯했던 이오젠이 쥬텐가이의 불문율을 어기고 쿠마테츠보다 먼저 인간의 아이를 양자로 입양해 키워 온 것.

자연의 질서는 때로는 깨지기도 한다는 메시지. 오만방자하고 무질서한 쿠마테츠를 왼손잡이로 설정한 건 그런 가식에의 도전을 은유한다. 이오젠이 오만으로 키운 이치로히코는 수시로 렌에게 “인간 따위가.”라고 비하하고 억압한다. 그건 제 출신을 숨기려는 인간의 이중성과 더불어 오만함 두 가지를 힐난하는 중의적 의미.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이 매우 중요한 메시지의 전령으로 등장한다. 최악의 빌런은 마지막에 모비 딕이 되어 렌을 죽이기 위해 시부야 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백경’의 선장 에이햅은 모비 딕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후 복수하기 위해 바다를 떠돌다 모비 딕에게 작살을 쏘는 데 성공하지만 전 선원과 함께 수장된다.

에이햅은 성서에서 악의 왕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기독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지주의적인 내용이라고도 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들이 자신을 신격화, 절대화하는 파상적 망상에 대한 경고라고도 해석한다. 빌런을 보면 후자이고, 렌을 보면 전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호소다가 확실히 자연주의자인 것은 맞는 듯하다.

[유진모 칼럼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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