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읽기] 정우성이 인정하는 배우의 가치, ‘시들지 않는 꽃’ 진의 탐색
- 입력 2019. 01.24. 15:19:33
- [더셀럽 한숙인 기자]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나올 때마다 소위 페미니스트들의 예민함과 과도한 공격성을 지적한다. ‘페미니스트’가 남자와 여자 이분법 사고에서 탈피한 성 평등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을 뜻하지만 신경과민, 피해망상 취급을 받기 일쑤다.
정우성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자유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여성이 남성의 성공 지표 역할을 했던 계급사회의 뿌리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여자들은 항상 매력도 평가에서 남자에 비해 ‘젊은’ 외모가 중요한 잣대로 등장한다.
페미니즘의 부상과 거부감, 대립이 극단적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꽃’이 공식석상의 금기어가 됐다. 꽃이 페미니스트들의 금기어가 된 데는 ‘촬영장의 꽃’으로 여배우를 지칭하는 미디어의 관행이 한 몫 했다.
영화 ‘도리화가’는 조선시대 여류 명창을 다뤘다는 의미와 달리 배우들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송새벽은 제작보고회에서 “수지 씨가 현장의 꽃이었다. 캐릭터에 참 잘 맞게 예뻤다”라며 ‘꽃’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송새벽의 표현은 정말 예뻤던 배우라는 말로 넘어갔으나 류승룡은 결국 논란이 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수지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현장에서 여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 기다림, 애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수지의 존재감, 꼼꼼함, 이런 것들이 우리 영화 끝날 때까지 많은 해피 바이러스를 줬던 것 같다”라며 ‘여배우의 덕목’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으로 여류 명창을 다룬 영화의 의미까지 퇴색하게 했다.
이처럼 ‘여배우’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수사회가 규정해온 ‘여성성’의 잣대에서 평가돼왔다. ‘꽃’은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성을 상징해 현 사회에서 가장 진부한 단어 취급을 받고 있기까지 하다.
이 같은 단어가 정우성의 입을 통해서 나와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22일 영화 ‘증인’ 인터뷰에서 “꽃은 시들지 않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라고 말한 소속사 동료인 염정아에 대한 정우성의 표현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같은 소속사 동료 배우에 대한 존경심 내지는 순수한 호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배우보다는 여자에 더 무게중심을 실은 듯한 뉘앙스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꽃은 시들지 않는다’는 과학적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꽃은 시들기 마련이고 꽃이 시드는 것은 추함이 아닌 생명의 고귀한 흐름이다.
반면 ‘꽃은 시들지 않는다’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면 정우성이 언급한 ‘꽃’을 배우의 매력도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꽃은 배우의 가치를 높이는 요건으로서 외모와 연기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함의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꽃을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해석한다면 ‘시들지 않는다’는 동료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실제 염정아는 정우성도 언급했듯이 JTBC ‘SKY 캐슬’에서 치열하게 얻은 로열패밀리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 도덕적 윤리까지 포기하는 무리수를 두는 인물 한서진을 완벽하게 소화해 국민 드라마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디테일 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섬세한 표정 연기는 대사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부각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반면 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시들지 않음은 ‘젊음’을 유지하는 외모로 해석된다. 그러나 최근 젊음과 매력이 등가 관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인식에서는 극히 시대착오적 발언일 수 있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중년 노년의 배우들이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연 혹은 주조연 급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처럼 달라진 분위기로 인해 젊음에 기준한 가치 평가는 동료는 물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다.
이처럼 정우성이 언급한 ‘꽃’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그가 의도한 바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대중의 답답함에 정우성은 “애정 어린 우려가 담긴 지적에 감사하다”는 말로 서두를 열며 SNS에 댓글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표현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드린 분이 불편하다면 그 표현은 지양되고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 되고 있는 차별적 표현이 어떤 것들인지 생각해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며 구구절절한 변명 없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말은 입 밖으로 나가면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생각과 분리되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생각과 개개인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 된다.
‘꽃’으로 시작된 논란은 정우성이 자신이 한 말의 다의성을 인정함으로써 조용하게 막을 내렸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페미니즘은 ‘배려’가 아닌 ‘평등’임을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별로 여배우와 남배우를 가를 수는 있으나 생물학적 의미일 뿐 이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역할을 나누고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습성이 관행이라는 이유로 더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