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유튜버가 할리우드 감독으로…‘백룸’·‘옵세션’이 바꾼 흥행 공식 [Ce:포커스]
입력 2026. 10.06. 16:00:00

'백룸', '옵세션'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유튜브에서 시작된 9분짜리 영상이 할리우드 영화가 됐다. 또 다른 유튜버가 만든 공포 단편은 제작자의 눈에 띄어 극장용 장편으로 이어졌다. 영화학교와 단편영화제, 현장 경험 등을 거쳐 상업영화의 메가폰을 잡던 익숙한 경로와 다른 방식으로 극장에 입성한 젊은 감독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올해 극장가에서 유독 강세를 보인 공포영화가 있다. ‘백룸’에 이어 ‘옵세션’까지 유튜브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20대 감독들의 영화가 연이어 흥행하면서 온라인 플랫폼이 신인 창작자에게 또 하나의 기회의 장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최근 국내 극장가에서 장기 흥행 중인 ‘옵세션’을 연출한 커리 바커 감독은 1999년생이다. 배우 쿠퍼 톰린슨과 함께 유튜브 채널 ‘댓츠 어 배드 아이디어’(That's a Bad Idea)를 운영하며 짧은 상황극과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바커 감독의 관심은 점차 공포영화로 향했다. 그는 유튜브에 20분 안팎의 공포 단편을 잇달아 공개하며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구축했다. 2024년에는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은 약 1시간 분량의 저예산 공포영화 '밀크 앤드 시리얼'을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하기도 했다.

극장으로 향하는 문을 연 것 역시 온라인에 공개한 작품이었다. 바커 감독이 만든 공포 단편 ‘더 체어’를 본 제작자 제임스 해리스가 극장용 영화 제작을 제안했고, 이후 ‘옵세션’이 탄생했다.

‘옵세션’은 짝사랑하던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남성이 예상하지 못한 파국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거대한 세계관이나 화려한 시각효과 대신 사랑과 집착이라는 익숙한 감정을 비틀어 공포로 바꿨다. 코미디와 공포를 오가며 짧은 영상 안에 상황과 감정을 압축해 온 바커 감독의 감각도 장편 영화에 이어졌다.

결과는 제작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약 75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옵세션’은 북미를 비롯한 해외에서 먼저 관객몰이에 성공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지난달 2일 개봉 후 누적 관객 92만명(10월 5일 기준)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유명 지식재산권(IP), 스타 배우가 흥행의 안전장치로 꼽히는 극장가에서 낯선 20대 감독의 저예산 영화가 이례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셈이다.



앞서 상반기 극장가를 놀라게 한 ‘백룸’의 출발점 역시 스크린이 아닌 인터넷이었다. 2005년생 케인 파슨스 감독은 16세였던 2022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케인 픽셀스’(Kane Pixels)에 약 9분 분량의 ‘The Backrooms (Found Footage)’를 공개했다. 2019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백룸’ 괴담에 자신의 상상력과 시각효과를 더해 만든 영상이었다.

노란 벽지와 형광등으로 둘러싸인 정체불명의 공간을 캠코더로 헤매는 듯한 영상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파슨스 감독은 이후 관련 콘텐츠를 잇달아 제작하면서 인터넷 괴담에 자신만의 설정과 이야기를 덧붙여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했다.

이후 A24는 ‘백룸’을 장편 영화로 제작하면서 이미 경력을 쌓은 감독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대신 원작 유튜브 영상을 만든 파슨스에게 직접 연출을 맡겼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영상으로 구현해 온 창작자가 그 세계관을 그대로 스크린까지 옮기게 된 것이다.

파슨스 감독의 첫 장편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백룸’은 북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데 이어 국내에서도 12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젊은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온라인에서 성장한 콘텐츠가 극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두 감독은 모두 유튜브에서 출발했지만 극장에 도착한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파슨스 감독은 자신이 온라인에서 구축한 ‘백룸’이라는 콘텐츠와 세계관 자체를 장편으로 확장했다. 반면 바커 감독은 여러 작품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연출력을 선보였고, 이를 눈여겨본 제작자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인 ‘옵세션’을 만들었다.

공통점은 유튜브가 단순히 이름을 알리는 수단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감독은 이곳에서 직접 작품을 만들고 별도의 상영 기회를 기다리지 않은 채 관객에게 선보였다. 관객은 조회수와 댓글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냈고, 온라인에 쌓인 작품은 이후 영화 제작자들이 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포트폴리오가 됐다.

이는 신인 감독이 상업영화에 진입하는 새로운 경로를 보여준다.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배우고 단편영화와 영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리거나, 현장에서 경력을 쌓은 뒤 장편 연출 기회를 잡는 기존 방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영상을 공개하고 전 세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으로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먼저 세상에 내놓고, 이후 영화산업이 이들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길이 생긴 것이다.



두 작품이 나란히 공포 장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규모 세트나 스타 캐스팅보다 아이디어와 공간, 음향, 카메라 연출만으로도 장르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포영화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제작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장르다.

실제로 ‘백룸’은 텅 빈 공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불안감을, ‘옵세션’은 사랑이라는 일상적인 감정이 집착으로 변하는 순간을 각각 공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익숙한 공포 공식이나 거대한 볼거리보다 자신들이 온라인에서 다듬어온 아이디어와 감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공통점도 있다.

올해 두 작품의 성공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공포영화가 잘 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 콘텐츠를 소비하며 성장한 세대가 이제 직접 창작자가 되고, 이들이 온라인에서 익힌 영상 문법과 이야기를 들고 극장으로 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유튜브는 영화와 관객의 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플랫폼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그 안에서 영화를 만들던 젊은 창작자가 할리우드의 선택을 받고, 온라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스크린을 채우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백룸’과 ‘옵세션’의 흥행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이 신인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온라인에서 직접 작품을 선보이고 관객의 반응을 얻은 뒤 상업영화로 영역을 넓힌 두 감독의 사례가 향후 영화계의 새로운 인재 발굴 방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리바이브콘텐츠('백룸'), 유니버설 픽쳐스('옵세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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