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 정성일, 치밀한 연기로 고쳐 쓴 이름[인터뷰]
입력 2026. 10.13. 15:15:35

정성일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배우 정성일이 치밀한 고민과 과감한 시도가 또 다시 빛을 발했다. 2인자의 묵직한 권력부터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본능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하도영'을 넘어 또 하나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는 9년 뒤, 더 큰 욕망을 향해 폭주하는 백기태(현빈)의 위태로운 여정을 그린 누아르 드라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과 2에서 정성일은 청와대 비서실장 '천석중' 역을 맡았다. 시즌1에서 범접할 수 없는 권력자의 위엄을 보여줬다면, 시즌2에서는 벼랑 끝에 몰리자 주저 없이 백기태의 등 뒤에 칼을 꽂는 등 집요한 생존 본능을 발휘하며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정성일은 "긴 시간 잘 준비해서 잘 보여드린 것 같다. 다들 잘 봐주신 것 같고 잘 마무리돼서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는 많이 섭섭하다. 너무 긴 시간 참여하기도 했고,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시간을 보내서 '앞으로 이런 시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크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주변에서 다들 재미있게 봤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가 많이 왔는데 대사를 따라 하더라. 전부 욕하는 대사들이었다"라고 웃으며 "사실 제가 고3 때까지 사투리를 쓰며 살았어도 서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뉘앙스가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시즌1 촬영 전에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도 만나고, 헷갈릴 때마다 전화해서 많이 물어봤다. 도와준 친구도 뿌듯해하고, 주변 반응이 다 좋아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정성일이 '메이드 인 코리아'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대본의 매력에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도 재미있었고, 감독님, 그리고 배우들 모두 함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었다. 또 이 캐릭터를 내가 표현했을 땐 어떤 식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면서도 "저는 처음에 대본이 한 번에 읽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봐서 재미가 없으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메이드 인 코리아'는 열자마자 한번에 다 읽었다. 대본이 얼마나 나에게 재미를 주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캐릭터에 접근을 하는 순서"라고 밝혔다.



천석중은 높은 위치에 있는 무게감 있는 인물이지만, 사투리를 통해 색다른 느낌을 선보인다. 천석중의 대표적인 특징인 경상도 사투리는 정성일이 감독에게 직접 제안해 탄생했다고.

"시즌1 미팅 때 제가 감독님께 먼저 제안을 드렸다. 어떻게 보면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역할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당시 그쪽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던 때가 아니었나. 제 고향이기도 하고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제안을 드렸다. 다행히 감독님이 너무 좋아해 주시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정성일은 천석중이라는 인물의 위엄을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연기적인 절제를 통해 구축해 나갔다.

"시즌1 대본을 보면 천석중이라는 인물은 이미 2인자로 설정되어 있었다. 백기태가 롤모델로 삼는 사람이고, 기태 위에 있는 가장 강해 보이는 국장조차 내 앞에서는 설설 기는 모습이 나온다. 장치적으로 시나리오에서 이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줬다. 극 중에서 대단해 보이던 사람도 저를 마주하면 저자세가 되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권력을 만들어 준 셈이다. 거기서 제가 연기적으로 힘을 더 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진짜 힘을 줄 때만 주고, 평소에는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캐릭터의 외형과 태도를 설정할 때 우민호 감독의 디렉팅도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고. 정성일은 "감독님이 천석중은 늘 턱이 하늘을 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내려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더라. 그걸 참고해서 연기하면 감독님이 참 좋아하셨다"며 "2인자지만 '내 위에는 단 한 명뿐이다'라는 자신감, 그리고 그 한 명이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여유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1인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그런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봤다"고 설명했다.



시즌1과 시즌2를 거치며 천석중이라는 인물이 맞이하는 서사의 변화는 배우로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자 도전 과제였다.

"시즌2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재미있었던 건 '어떻게 이 사람이 무너지는가'였다. 시즌1에서는 주변이 만들어주는 인물의 위치에 있었기에 속내를 내비치는 입체감은 적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시즌2에서는 망가져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본능들이 계속 드러난다. 찌질함도 보이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나온다. 결국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도 그렇고, 2인자로서 기저에 깔려 있던 욕망이 확 터져 나오다 보니 그 과정이 참 흥미로웠다. 시즌1 때 보여준 2인자로서의 무게감을 지키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특히 시즌2에서는 시즌1에서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인물들과의 호흡이 새로운 긴장감을 더하기도 했다.

"시즌1 때는 백기태를 가장 많이 만났고, 사실 그 외의 인물들은 시즌2에서 처음 만났다. 모든 인물들을 다 처음 마주하다 보니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집중했다. 저에게는 시즌1에 못 만난 배우들이기도 하지만, 천석중이라는 캐릭터로서 앞서 거론만 됐던 역할들을 직접 만나는 거라 배우로서 너무 기다려졌던 순간이다. 그리고 천석중으로서 이들에게 줘야 하는 압박감과 '결코 쉽지 않은 상대'라는 느낌을 명확하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 씬 재미있으면서도 고민이 정말 많았다."

9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단번에 체감하게 만든 상대 배우 현빈과의 호흡 역시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시즌2 첫 씬에서 제가 기태를 부르며 '일단 빨리 오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정말 천석중이 백기태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게 보이더라. 완전히 쫄아서 나가며 '기태야'라고 부르는데, 그건 시즌1의 모습이 아니었다. 같이 앉았을 때의 호칭이나 술을 마시며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태도 자체도 시즌1의 기태가 아니었다. 9년의 세월을 빠르게 인지하고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준비한 부분도 있지만, 현장에서 현빈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완전히 바뀐 백기태 덕분이었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온 백기태 덕분에 9년이라는 시간을 훨씬 더 깊게 체감할 수 있었다."

정성일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는 연기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작품으로 남았다. 그는 "참 애틋한 작품이다. 애정도 많이 가고, 든든한 느낌이 있다. 제게 또 하나의 이름을 만들어준 것 같고, 배우로서 오롯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고 돌아봤다.



2002년 영화 'H'로 데뷔한 정성일은 오랫동안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이후 드라마 '비밀의 숲 2', '우리들의 블루스'를 거쳐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하도영 역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드라마 '트리거', 영화 '전,란', '살인자 리포트' 등을 통해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증명해내고 있다.

치열한 필모그래피가 증명하듯,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연기하는 정성일의 스타일은 때로 깊은 감정적 소모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성취감이기도 하다.

"감정 소모가 크지만, 그걸 해내고 났을 때 오는 성취감도 있다. 운동할 때도 마지막에 하나 더 했을 때 오는 쾌감이 있지 않나. 나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이 정도 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면 조금 찝찝해서,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게 하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자기검열이 엄격한 편이라 늘 불안하고 '내가 잘하고 있나' 싶지만, 그렇기에 그 뒤에 오는 성취감이 더 크고 그걸 계속 원하게 된다."

드라마와 영화 등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무대를 놓지 않는 이유 역시 연기의 근본을 채우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

"저는 태생이 연극이기도 하고, 무대라는 공간을 정말 좋아한다. 제 연기의 바탕이 다 거기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체 연기를 하다가도 다시 채우러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촬영 스케줄에 쫓기다 보면 공연에서 배우고 생각했던 기본을 잊고 연기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 다시 공부하러 간다. 그리고 공연계에도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난다. 젊은 연출가나 배우들을 보며 새로운 걸 배우는데, 예전에 해왔던 방식만 고집하면 내가 언젠가 도태된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서면 생기와 활력이 도니까 시간이 될 때마다 계속 찾게 된다. 다행히 지금의 대표님과도 그런 생각이 잘 맞는다. 당장이 아니라 멀리 봤을 때 이 시간들이 나를 메마르지 않게 해주는 순간이 된다. 그 시간을 요청했을 때 대표님도 흔쾌히 배려해 주셔서 지금까지 잘 올 수 있었다."

'더 글로리'의 하도영 역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만큼, 이미지 고착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터. 정성일은 이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덤덤하게 전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무대와 매체를 넘나드는 정성일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어낼지 자연스레 기대를 모았다.

"'더 글로리'가 끝난 후부터 그 고민은 계속 있었다. 이후 들어온 많은 대본을 보면 다 수트를 입은 '하도영'이었다. 감사하지만 다 거절해야 했다. 그 인물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싶었고, 이러다 내 이름이 진짜 하도영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전,란'을 선택했고, '트리거'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찾아갔다. 그런데 초반에는 일부러 거절했지만, 이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굳이 거절해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히려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그 역할을 다시 하더라도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거 아닌 듯했던 그 말이 어느 순간 깊게 와닿더라. 비슷한 역할을 해도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 모습이 저의 첫인상일 수도 있지 않나. 늘 처음처럼 연기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예전에는 저를 차갑거나 어렵게 보시는 분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한결 편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최근에는 길에서 한 아이의 어머니가 '천석중 삼촌이다!' 하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시더라. 이렇게 제게 새로운 이름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 같다."

[셀럽미디어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인터뷰 최신기사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