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어도 다 전해진다"…아름다워서 더 먹먹한 '네이처 오브 포겟팅'[공연 뒤풀이]
입력 2026. 10.21. 10:35:45

'네이처 오브 포겟팅'

[셀럽미디어 임예빈, 정원희 기자] 대사 중심의 연극도, 화려한 넘버가 가득한 뮤지컬도 아니다. 온몸을 던지는 유려한 몸짓과 무대를 가득 채우는 라이브 음악만으로 순식간에 객석을 매료시키는 극이 있다.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The Nature of Forgetting)은 조기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머릿속 사투를 아름답고도 아련하게 펼쳐내며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1년에 100편 이상의 공연을 관람하는 공연 담당 임예빈, 정원희 기자가 '네이처 오브 포겟팅'을 관람한 뒤 솔직 담백한 후기를 나눴다.

◆ 피지컬 시어터 '네이처 오브 포겟팅'
회차 : 10월 17일(토) 15시 공연
출연: 전성우(톰 역), 김주연(소피/이자벨라 역), 곽다인(마이크 외), 송나영(엠마 외)

1. 첫인상과 장르 "대사 없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했는데…"

임예빈 기자: '피지컬 시어터'라는 장르를 이번에 처음 접했거든요. 사실 관람 전 공연 스틸만 봤을 때는 대사 없이 어떻게 이야기를 전하려는 건지 잘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까 말 한마디 없이 모든 서사와 감정이 와닿아서 정말 감탄했어요.

정원희 기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다 보니 아트원 2관 공연 때부터 이 작품을 정말 좋아했는데요. '비언어적 표현이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말을 이 공연을 보며 몸소 느껴요. 대사 대신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 호흡만으로도 어떤 상황이고 무슨 감정인지 온전히 파악이 되잖아요.

임예빈 기자: 맞아요. 완전히 대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렴풋이 대화를 하고 있구나' 느낄 수 있어서 마치 한 편의 무성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정원희 기자: '무성 영화'라는 표현이 딱 맞네요! 장면의 분위기나 긴장감을 오롯이 인물의 움직임과 사운드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직관적인 매력이 있는 극이에요.



2. 무대 연출과 조명 "행거와 조명이 만들어낸 기억의 백스테이지"

임예빈 기자: 연출적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무대 양옆으로 옷 행거들이 계속 돌아다니는데, 현실 속 톰의 방이지만 조그마한 나무 판자 무대가 톰의 진짜 무대이고, 그 바깥은 백스테이지처럼 느껴지게 하는 무대 구성이었던 것 같아요.

정원희 기자: 행거에 걸린 수많은 옷들로부터 톰의 기억이 하나씩 끄집어내지는 연출이 신선하죠. 우리도 특별한 날 입었던 옷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하잖아요.

임예빈 기자: 조명 활용도 인상 깊었어요. 전반적으로 노란 조명이 황혼을 떠올리게 하고, 톰의 아련한 추억 속에 몰입하도록 도와줬거든요.

정원희 기자: 지난 시즌에 배우들이 말하길, 이 공연에서 쓰는 조명은 해외에서 직접 들여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조명 연출에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조명이 시각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보는 장면, 사고 직전의 장면 등으로 급변할 때 시공간 전환을 또렷하게 짚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요.

3. 배우들의 연기 호흡 "몸을 사리지 않는 무대 위 난이도 최상의 연기"

임예빈 기자: 신체적인 움직임과 시간의 이동이 복잡해서 무대 난이도가 엄청 높잖아요. 그런데 전성우, 김주연 배우를 비롯해 송나영, 곽다인 배우까지 합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특히 김주연 배우의 인상이 크게 남았어요. 빨간 머리띠를 하고 등장할 때 '톰이 왜 첫사랑 이자벨라를 그토록 따라가는지'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설득이 됐거든요. '내가 톰이어도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죠.(웃음)

정원희 기자: 그리고 배우들이 자기 장면이 아닐 때도 네모난 무대 안팎을 부지런히 오가잖아요. 의자나 소품을 타이밍 맞춰 배치해야 하니까요. 심지어 톰을 제외한 세 명은 역할도 조금씩 바뀌다 보니 무대 밑에서 옷도 빠르게 갈아입어야 하고요. 정말 합이 조금만 틀어져도 안 되는 구조라 가만히 있는 순간이 단 1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는 배우들의 명확한 대사 톤이나 미세한 호흡 표현이 조금 더 도드라진 느낌도 있어요. 극장 규모가 커진 만큼 멀리 있는 관객에게까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느껴졌죠.

임예빈 기자 : 맞아요. 공연장이 커지면 표정이 다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표현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4. 명장면과 기억의 조각들 "가장 아름다운 순간, 그리고 찬란했던 파편"

임예빈 기자: 그러면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정원희 기자: 저는 톰과 이자벨라가 결혼한 뒤에 둘이 남아서 이어가는 장면들을 꼽고 싶어요. 정말 꿀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죠. 특히 거기서 톰이 이자벨라를 안아들고 이자벨라는 의자를 든 채 함께 빙글빙글 도는 고난도 모션이 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항상 감탄하게 돼요. 그 장면에 톰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볼 때마다 울컥하기도 하고요.

임예빈 기자: 저는 그 직전에 펼쳐지는 '결혼식 뒤풀이 시퀀스'가 가장 좋았어요. 사실 연습실 영상에서 다 같이 흥겹게 춤추는 모습을 보고 언제 나오나 기다렸거든요. 실제 무대에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와글와글 즐기는 분위기가 참 좋더라고요. 그 장면이 방금 말씀하신 오붓한 빨간 드레스 장면으로 이어지잖아요.

정원희 기자: 맞아요. 결혼식 후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이자벨라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그 흐름이 톰의 수많은 기억 조각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겠죠.

임예빈 기자: 아름다웠던 기억이 순식간에 뒤죽박죽 엉켜버리는 첫 번째 기억 혼란 장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청춘이다, 예쁘다' 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순간 무대가 혼돈으로 뒤섞일 때 감성이 깨지며 충격이 확 오더라고요.

정원희 기자: 공연을 여러 번 보면 그 뒤섞이는 장면이 일종의 복선 같아서 더 재미있어요. 인물들이 정신없이 부딪히며 취하는 동작들이 알고 보면 뒤에 나오는 톰의 기억 속에 그대로 나오는 모션들이거든요. 그리고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억들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죠. 기억이 조각나서 흩어지는 과정을 참 영리하게 구성했어요.

5. 음악의 존재감 "제3의 배우이자 장르를 완성하는 사운드"

정원희 기자: 이 극에서 라이브 음악을 담당하는 두 분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건반, 드럼, 각종 타악기까지 다루면서 루프 스테이션을 돌려 음악을 완성해 내시잖아요.

임예빈 기자: 맞아요. 피지컬 시어터라는 생소한 장르를 확고하게 정립해 주는 게 바로 이 사운드 연출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어요. 노래나 대사가 없다는 점에서 무용과 차별화되는 부분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음악을 효과음, 분위기 조성 뿐만 아니라 배우의 목소리처럼 쓴다는 점에서 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정원희 기자: 공연을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음악 타이밍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두 분들이 은근히 극에 직접 개입하기도 하고요.(웃음) 선생님 역할로 무대에 잠깐 올라오거나, 마이크가 반지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묻기도 하죠.

임예빈 기자: 정말 두 분 모두 많은 짐을 지고 계신 것 같아요.



6. 기억의 메시지 "왜 이토록 잔인할 만큼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임예빈 기자: 공연을 보면서 '치매라는 슬프고 가슴 아픈 질병을 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연출로 풀어냈을까'를 깊이 고민해 봤거든요.

정원희 기자: 새로운 접근이네요. 예빈 기자가 내린 결론은 뭐였나요?

임예빈 기자: 일종의 '이해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와 찬란했던 추억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쫓아가는 톰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니까요. 누구나 오래된 기억이 바래져가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잖아요. 치매에 걸린 톰이 기억을 붙잡으려 애를 쓰는 모습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정원희 기자: 깊이 있는 시선이네요. 저는 한 발 더 나아가 '기억' 자체에 초점을 맞춰 봤어요. 꼭 치매라는 병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세월이 흐르며 소중했던 순간의 기억들이 희미해지는 슬픔을 겪으며 살아가잖아요. 그 아련함을 일깨워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기억과 삶을 더 사랑하고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남겨주는 극이라고 느꼈어요.

7. 총평 및 추천 "컨디션 관리는 필수,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웰메이드 수작"

임예빈 기자: 다른 캐스팅으로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었어요. 다만 무성극이고 장면의 흐름이 순행적이지 않은 탓에 관객 본인의 컨디션이 안 좋거나, 어떤 이유로 극의 흐름을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몸이 좋지 않아 약을 먹고 봤는데, 중간에 잠깐 확 집중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컨디션이 좋을 때 봤으면 더 좋았겠다, 아쉬움이 있죠.

정원희 기자: 맞아요. 정적과 흐름이 중요한 극이라 관객들의 관람 태도와 본인의 컨디션이 몰입에 큰 영향을 주죠. 저는 소중한 가족, 친구 등 그 누구를 데려가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보기 드문 웰메이드 극이라고 생각해요. 잊고 싶지 않은 행복한 기억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눈물 한 방울 훔치고 나올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 한줄평 & 별점

★★★★★ (5.0 / 5.0)
"언어를 뛰어넘는 신체극의 정수. 찬란한 기억을 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정원희 기자)

★★★★☆ (4.5 / 5.0)
"망각에 대한 따뜻한 시선. 다만 관객의 컨디션도 관람에 많이 영향을 줍니다"(임예빈 기자)

[셀럽미디어 임예빈, 정원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연극열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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